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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Jul 05. 2024

말하기의 반대는 기다림이다

“말하기의 반대는 듣기가 아니다. 말하기의 반대는 기다림이다.” 


얼마 전, 이 말을 듣곤 머리가 띵(!) 했어요. 언젠가부터 제게 듣는 행위가 잠시 멈춰 다시 말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순간으로 이해되는 것 같단 불안감이 들었거든요. 듣기는 어느 정도의 자제력을 요구합니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 노력을 놓치다 보면 마냥 혼자 횡설수설 아무 말을 늘어놓을 때가 있어요. 말하는 당사자에게 그 시간은 짧게 느껴지지만, 그 두서없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거기에 위계적 관계가 얽혀 있다면, 말해 무엇하겠어요. 듣기는 인내력 테스트일 뿐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편한 사이인 몇몇 분께 제 대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 부탁해 뒀어요. 그래야 계속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나누고 저 자신도 그 속에서 성찰할 기회를 얻을 테니까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말하기와 듣기가 그저 고요 속의 외침일 뿐이란 생각을 하면서, 경청의 자세를 갖춰보자 다시 다짐해 봅니다. 



구독자분들께선 가장 최근 도서관에 방문한 적이 언제인가요? 저는 도서관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 꼭 책을 읽거나 빌리지 않더라도 종종 도서관에 갑니다.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재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어딘가 지친 마음이 잔잔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요. 어떤 커다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단단함이 느껴지거든요. 도서관에서 각자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자기의 일을 침묵 속에 조용히 하고 있어 딱히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도서관에 가면 공동의 공간으로 또 모두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게 도서관이란 공간이 주는 힘일까요?


참, 이번 주(4.12~4.18)는 도서관 주간입니다. 다양한 행사가 지역 도서관 곳곳에서 열리고 있어요. 도서대출 권수도 대폭 확대되는 흔치 않은 때이기도 하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 주, 집이나 회사 근처 도서관에 가보시길 감히 권해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 혹은 기회를 마주할지 모르니까요.

충남 홍성군에 있는 충남도서관에 잠깐 들렀어요. 탁 트인 창문과 높은 층고가 인상 깊었습니다. 사진은 아이폰 라이브 포토로 찍어 살짝 소음이 났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찍는다곤 했는데 혹시 들으신 분이 계셨을까 걱정이 되네요. 기록해두고 싶은 욕심에 찍었는데, 마냥 욕심부리면 안 되겠지요.


도서관 이야길 꺼낸 것은, 요즘 제가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 이야길 하고 싶어서인데요. 일하는 것과 관련된 책들을 한창 읽고 있거든요. 일과 삶의 균형을 가져가야 한다고 하지만, 삶에서 일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단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또 그만큼 성과를 내고 싶단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삶과 일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다양한 레퍼런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싶더라고요.


살펴보니 많은 책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단 이야길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보였어요. 일의 비전에 대한 같은 생각을 갖고, 함께 결과를 만들어가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중요성 말이죠. 그리고 신뢰와 믿음을 쌓기 위해선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단 언급이 꼭 붙더라고요.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마음, 타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자기 효능감이 일에서 꼭 필요한데, 이 자기 효능감을 내면에 쌓기 위해선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친절한 듣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일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렇게 일을 마무리했을 때 얻게 되는 성취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은 어찌 보면 무수한 듣고 말하기의 과정, 그것이니까요.


R. J. 팔라시오가 쓴 <아름다운 아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이 말, 이 개념을 좋아하는 까닭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듣기는 상대를 향한 친절의 적극적인 표현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일터에서 듣는 시간이 쌓여 제 태도와 생각 속에 존재하는 무심함, 냉소주의, 무관심, 이기심 같은 것들을 공감, 연민, 도덕적 상상력 같은 긍정적인 것들로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막연히 그런 기대를 하게 되네요.


참, 듣기의 중요성에 대해 작년 이맘때에도 고민했었거든요. 그리고 <잘 듣고, 잘 나누는 것>이란 제목으로 뉴스레터를 보냈었지요. 출발선에서 준비를 끝내고,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3~4월이 되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또 채우려 노력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나 봐요. 올해엔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분발해야겠습니다.



오늘 읽은 논문은 <1980년대 발행 <홍동소식>에 나타난 하이퍼로컬 미디어성(性)(2023)>입니다. 연구자들은 1985년 5월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창간되어 1년 8개월 동안 발행되다 폐간된 <홍동소식>을 분석하고 있어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협동운동의 사례를 이야기할 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강원도 원주, 충남 홍성 홍동 등이 빠지지 않고 언급되곤 합니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교육, 농촌을 지키면서 마을공동체를 기르고 가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을 지향하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 유기농업을 시작하고 요즘엔 농업과 돌봄이 결합한 사회적 농업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농업 활동을 펼쳐가는 사례 등 홍동 지역의 활동은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운동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이야기됐습니다. 논문은, 공동체 소유의 비영리 매체였던 <홍동소식>의 시작과 끝을 자세히 분석하며 지역의 ‘소통 공간’이자 ‘열린 공간’으로 공동체 형성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연구자들이 분석한 내용을 통해 1980년대 홍동의 모습을 잠시나마 그려볼 수 있더라고요.


‘지역과 연관 있는 이야기’의 생산과 유통을 도맡은 <홍동소식>과 같은 하이퍼 로컬 미디어(hyper-local, 로컬보다 더 작은 단위의 지역에서 뉴스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는 주류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참여자들의 의견과 주장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지역 밀착한 접근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일으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그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작은 범위의 물리적 공간 내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일상생활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공동체를 복원하고,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지역공론장 형성을 도모”한다고 정리합니다. 실제로 <홍동소식>은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각종 생활 정보와 함께 마을의 소소한 일상을 즐겨 다룹니다. 또한, 홍동 지역에 산재한 문제들을 의제화하고, 그 문제 해결에 마을주민들의 적극적 개입과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렇게 지역에 밀착해 있죠.

  

논문을 읽으며, 충북 옥천에 자리 잡은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발행하고 있는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 생각이 났습니다. 지역의 자원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담고 있는 옥이네는 전국 유일의 군 단위 월간지라고 해요.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옥이네에는 마을의 긴 역사를 온몸에 쌓아온 어르신, 귀촌한 청년, 공동체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 농민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깊이 있게 담깁니다. 그렇게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디어와는 다른 소통 방식을 선택해서 2017년부터 지금까지 매월 발행되고 있어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는 것, 그 과정에서 청소년 참정권, 길고양이, 빈집, 여성농민, 기후위기, 수몰마을 등 같은 주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됩니다. 지금은 그렇게 실재하고 구체적인 소통이 필요한 때란 생각을 합니다. 그 소통으로 열린 공간, 함께 실현 가능한 해답을 찾아 나갈 공간을 또 만들어가야겠죠.



인터넷에서 위 이미지를 보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싶더라고요. 웃자고 만든 밈인데 심각해질 게 무어냐 싶지만, 웃고 난 뒤 어딘가 찝찝했어요.


지금 이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 중심 기업이라는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조직을 사회적경제조직답게 만드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그렇게 틀만 갖추면 사회적경제조직일까요? 구독자분들의 생각을 잘 듣기 위해 기다림을 선택해 봅니다. 오늘의 듣고 또 말하기는 안녕하신가요? 




격주로 발행하는 뉴스레터 <오늘의 논문>에 실린 글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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