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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Jul 15. 2024

디폴트 값은 '다름'이라고요!

‘나와 당신의 생각은 다르다.’ 


다르다는 전제가 없으면 논의를 계속 진전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각자의 배경과 이해관계의 차이는 관점의 다름을 가져옵니다. 그러니 어떤 이슈를 다룰 때, 모두가 한 번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야길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묻고 또 듣고, 그리고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그 어떤 결론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기회인 동시에 도전과제입니다. 모두가 그 과정에 열정적일 순 없고, 또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할 수도 없죠. 그럼에도 그 지난한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것은, 함께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너와 나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과정도, 결과물도 매우 불편할 수 있고, 그것 자체가 일종의 자기 성찰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민주적인 논의 과정에서 기대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노력 대비 성능이 높지 않은 이 과정이 협동조합이란 조직에서 상시 반복됩니다. 더 잘 결정하기 위해 구성원 각자가 학습해야 합니다. 저 멀리서 백마 탄 리더(..)가 와서 뚝딱 해결해 주는 일은 없거든요. 진지하게 공부하고 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다른 방식의 노동은 다른 방식의 시간 사용을 요구합니다. 협동조합은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전반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조직 형태일지도 모르겠어요. 


협동조합이 어떻게 잘 작동할 수 있을지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렵단 생각을 합니다.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을 잘 반영한다는 것은 최소 5명, 많게는 수백만 명의 개인 소유자가 협동조합에 관심을 두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와 체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나와 당신이 조합원이고,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을 소유하고 있고, 경영진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모든 조합원이 가져야 하죠. 협동조합을 통해 경제적 가치 이상의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차이가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되겠죠.


또한, 다양하고 전문적인 이사회에 바탕해 협동조합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협동조합이란 조직 형태가 갖는 복잡성은 누군가에겐 매력적이지만 한편, 누군가에겐 피곤한 일입니다.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것은 큰 행운일 텐데요, 협동조합이 특히나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달리(Dall-E)에게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 리더(..)가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런 작품을 내놓았네요. 신뢰가 백프로 가진 않지만... 한 번 믿어봐야 할까요?



얼마 전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열린 ‘로컬다이브’ 행사에 다녀왔어요. 커뮤니티, 공동체, 지역, 지역사회, 로컬. 같으면서 또 다른 단어의 쓰임을 새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제 개인적으로는 공동체라고 표현할 때보다 커뮤니티라고 말할 때 확장성과 유연함이 상상되고, 지역 혹은 지방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 로컬이라 할 때 창의성과 힙함(..)이 그려지거든요. 혼용해서 사용할 때도 많지만, 각 단어는 확실히 다르게 쓰이고 있는 듯해요. 


오늘 살펴본 논문은 ① 마을만들기를 통한 공동체 형성과정 : 대전광역시 석교동을 중심으로(2016), ② 아파트 주거공간의 ‘선택적 공동체’ 참여 과정 탐구: 대전광역시 B 공동체 사례를 중심으로(2022)입니다. 협동조합과 로컬에 대해 자꾸 들여다보다 보니 관심이 가더라고요. 함께 살펴보실까요?


첫 번째 논문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활발했던 시기인 2016년에 발표됐습니다. 연구자들은 대전 중구 석교동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1) 참여활성화(2005~2009: 주민워크숍, 마을조사 등 공동체 활동 추진), 2) 주민조직화(~2012: 교육공동체한뼘더, 석교마을신문, 허준의밥상 등 조직), 3) 준자치적 단계(2013~2016: 석교마을미디어센터, 마을축제, 석교마을N사람들 사회적협동조합 활동)로 살펴봅니다. 공동체 형성이 단계별로 명확히 구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한계를 명시하면서 말이죠. 


마을의 문제를 공유하는 공론화 과정은 주민들 간의 공동체 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됩니다. 석교동이라는 특정 지역 안에 함께 거주하는 주민들은 구성원으로 서로 다양한 소모임과 활동을 통해 소통의 기회를 얻고,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렇게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각자의 역할을 하죠. 이는 서로의 동질감을 쌓는 동시에 외부와의 차이를 인식하게 합니다. 그 안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게 되고요. 그런 활동들이 점차 협동조합이란 조직 형태를 만나 정교화되고 마을 안에 일자리를 만들고 생활방식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연구가 이뤄진 석교동뿐만 아니라 ‘마을만들기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여러 지역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지역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사업을, 활동을 만들었습니다. 


삶터에서 얻는 안정감과 친밀감은 분명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번 마을만들기 사업의 사례를 접할 때 이러한 경험이 일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묻게 됩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일터와 삶터의 물리적 거리도 그렇고 정주하기 어려운 현실도 그렇고요. 그렇다면, 마을만들기란 일부 사람들의 ‘선택적 공동체’는 아닐까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암묵적으로 ‘선택적’이란 단어를 제외하고 그저 ‘공동체’로 지칭하는 것일까요?


그러다 2022년에 발표된 두 번째 논문을 읽게 됐습니다. 논문에서 다루는 ‘선택적 공동체’는 지역공동체의 구성요소(지역성, 사회적 상호작용, 자발성, 공동 유대 등)를 갖고 있는 동시에 개인의 필요와 취향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도시의 보편적 거주형태인 아파트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운영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이 논문 역시 '대전'에서 이뤄진 공동체 활동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더라고요.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중심으로, 전 세대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 B 공동체가 대상입니다. 


논문은 공동체의 형성과정보다는 공동체에 참여한 대표자, 실무자, 수강자 등 주민 각각의 공동체 참여의 특징과 참여에 대한 인식을 살펴봅니다. 기본 전제는 참여하는 주민 모두 필요와 흥미가 다르며, 그래서 공동체 참여를 선택하게 된 동기와 목적, 공동체에서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는 “수강자 주민은 참여 과정에서 소요한 시간과 비용 대비 효과가 클 경우”에, “대표자와 실무자 주민의 경우 공동체 참여에 대한 책임감, 성취감 등”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편, 참여 기간이 오래된 몇몇 수강자 주민에겐 “개인적 회복, 정서적 유대 등과 같은 새로운 참여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정리합니다.


논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조율된 새로운 집합성을 추구하고 필요에 따라 거리를 두다가도 능동적으로 참여를 선택하고자 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공동체의 대안이자 기회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기회주의적(..)인 공동체의 등장 정도로 봐야 할까요? 맘 내킬 때는/필요할 때는 참여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으. 모르겠습니다.


논문에서 인용한 전상인 교수의 책 <아파트에 미치다>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섬이 아닌 모습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서로가 서로에게 섬이 되고 싶은 것 또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을 갖고 있기에 그 이중성을 이해한 접근이 필요한 것일까요? 공동체 그 무엇에 관한 저 자신의 이중적 태도와 입장을 생각하면 될 텐데, 저 자신도 어떤 상태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못 하고 있으니 이렇게 모르겠단 소리를 연발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사람이란 무엇일까? (갑자기 사람에 대한 물음으로까지 점프하게 되네요.)



‘읽기’는 능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요.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서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읽는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때론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기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이해가 잘되지 않아 한 지점에 멈춰서 계속 도돌이표입니다. 점점 읽는 것이 어렵게 느껴져요. 정보는 차고 넘치고, ‘봐야’하는 것들이 수두룩한데, 이렇게 천천히 곱씹으며 읽다가는 뒤처진다는 걱정이 그 이유 중 하나인데요, 사실 본질적인 이유는 읽고 이해하는 데 들어가는 그 묵직한 시간의 버거움 때문입니다. 지루하고 지겹다고 느끼니까요. 그래서 대각선으로 거칠게 몇몇 키워드를 훑어보고 이내 ‘다 읽었다’라고 접어버립니다. 읽은 게 아니라 본 건데 말이죠. 


“... 오직 지금 읽는 행위 그 자체의 흥미에 몰두하는 선형적 읽기와 질서의 파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위계화하고 존재를 배치하는 구조적 읽기 사이에 다른 읽기는 없는가”라고 묻는 엄기호 교수의 글을 읽으며 다른 읽기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논문’이 다른 읽기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커뮤니티 활동, 참여에선 읽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텍스트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을 읽고, 표정을 읽고, 더 나아가선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물론 오독도 참 많고요. 읽고 쓰는,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한 일들을 다시 돌아보는 요즘입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집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뉴스레터 <오늘의 논문>에 실린 글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https://diveintocoop.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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