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규만 최고인줄 알았던 내가 일본 소도시에서 본 것

최고의 와규 축제, 마쓰사카 우시마쯔리 2025 후기

by 오렌지노

고베규만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일본 여행을 다니며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정성껏 구운 고베규를 맛볼 때마다 ‘와규의 끝’은 이미 보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어느 소도시에서 우연히 열린 지역축제, 그 하루가 제 확신을 조용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미에현 마쓰사카, 축제의 이름은 우시마쓰리였습니다.


그날따라 공기는 유난히 맑고, 바람은 묵직했습니다. 축제장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지역 농가의 트럭이 줄지어 서 있었고, 사람들 손에는 도시락 대신 빈 배낭이 들려 있었습니다. 오늘은 먹을 게 많다는, 축제를 오래 즐기겠다는 표정들이었지요. 길모퉁이를 돌자 멀리서부터 달콤한 연기가 낮게 깔려 왔습니다. 그 연기는 제가 알고 있던 ‘레스토랑의 와규’와는 다른 결을 예고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고기의 이야기가 접시 위에서 끝나지 않겠구나, 생산자의 시간과 공간까지 함께 맛보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우시마쓰리는 소를 가까이서 본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넓은 마당에 줄지어 선 일본흑우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기억납니다. 호기심이 아니라 존중에 가까운 눈빛이었고, 박수 소리도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체형과 윤기를 천천히 살피는 동안, 관람객들은 저마다 작은 메모를 적거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장면 앞에서 저는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고기를 “결과물”로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의 고기는 결과물이기 전에, 오랜 시간과 선택의 합으로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길렀는지, 어떤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줄였는지,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접시에서만 확인하던 품질이, 살아 있는 리듬으로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한낮이 가까워지자 축제장에 불이 본격적으로 붙었습니다. 숯 위에서 지방이 녹는 소리가 바삭바삭하게 귀를 간질였고, 연기는 달고 고소했습니다. 저는 줄을 서서 작은 꼬치를 하나 받아 들었습니다. 첫 입은 늘 소금만으로 먹어 보자는 제 작은 습관을 따랐습니다. 그 한 점이 입 안에서 서서히 풀리는데, 단맛 같은 고소함이 길게 남았습니다. 고베에서 느꼈던 섬세한 감촉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고베규가 우아한 선율로 다가온다면, 마쓰사카규는 낮은 음자리표의 묵직한 현으로 울리는 느낌이랄까요.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같은 장르 안의 다른 명연주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설명하려 애쓰는 대신, 한동안 말없이 씹었습니다. 혀가 먼저 이해하고, 머리가 나중에 따라왔습니다.


오후가 되자 경매가 시작됐습니다. 손을 번쩍 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공기 속 긴장감은 또렷했습니다. 낙찰망치 소리가 울릴 때마다 사람들 사이로 짧은 탄성이 번져 갔고, 그 순간만큼은 고기가 아닌 ‘작품’이 오가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비로소 와규라는 세계를 한 겹 더 이해했습니다.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 한 해 동안 쌓아 올린 선택의 무게가 가격이 되고 의미가 되는 자리. 레스토랑에서 못 보던 장면이 여기에는 있었습니다.


축제가 막바지로 향할 즈음, 저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고베규만 최고라고 믿었던 제 마음에는 빈틈이 하나 생겼고, 그 빈틈으로 새로운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마쓰사카에서의 경험은 제가 사랑하던 고베를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베에서 느낀 섬세함을 더 또렷하게 해 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도시와 두 브랜드가 한 그릇 안에서 다투지 않고, 각자의 클라이맥스를 들려주는 법을 배웠다고 할까요. 미식에서 비교는 승부가 아니라 해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쓰사카의 하루가 조용히 보여 주었습니다.



마쓰사카를 떠나는 날, 축제장을 떠올렸습니다. 줄지어 선 소들, 조용한 심사, 박수의 온도, 낙찰의 여운, 그리고 한 점의 고기. 여행이 주는 뜻밖의 선물은 대개 이렇게 오지요. 지도를 따라 계획한 명소가 아니라, 길 위에서 갑자기 발견한 현장. 그 현장에 발을 들이고 나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살짝 다른 각도로 열립니다. 저에게는 고베규만이 와규의 정상이라는 평면도가, 마쓰사카라는 지형 덕분에 입체 지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누가 최고냐고 묻는 대신, 어디의 어떤 하루가 나를 설득했는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고베에 갈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또 마쓰사카로 향하겠지요. 두 도시 사이를 오가는 제 입맛의 여행은 아마도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고베규만이 와규의 끝이라고 믿고 계셨다면, 마쓰사카의 한 해를 모아 놓은 그 하루, 우시마쓰리에 몸을 맡겨 보시길 권합니다. 접시 위의 한 점을 넘어, 그 한 점이 태어난 풍경까지 함께 맛보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여러분의 입안에는 아마도 새로운 질문이 머물러 있을 겁니다. “나는 어떤 순간의 고기를 사랑하는 사람일까?” 그 질문이 생겼다면, 이미 절반은 맛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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