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
2020. 01. 26
공식적인 개강은 아니지만 오늘부터 저는 개강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좀 진중하게 재택근무에 임하고자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업을 듣는 건 아니었지만 제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사수님께서 내주신 과제가 있어서 그 과제를 지금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간단한 코딩 과제인데 새로운 언어라고 해야 될까요? 환경에서 개발을 하는 거여서 조금 낯설긴 했는데 그래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기준으로 대학원 생활의 시작인 날입니다. 그래서 제가 왜 대학원에 왔는지를 좀 딱 남겨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리를 하자면, 저는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대학원에 왔습니다. 사실 되게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요, 세상에 풀어야 될 문제들이 너무 많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방식도 너무 다양하잖아요. 그걸 잘 알아서, 그리고 그런 것들이 관심이 많아서 대학원에 오기 전 학부를 다니는 6년 동안 되게 많은 경험을 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전공이 기계공학이니까 기계공학뿐만 아니라 이제 과학, 공학에 관련된 다른 분야들도 많이 알아보고자 했고, 그리고 과학 공학뿐만이 아니라 강연이라든지 교육, 비즈니스, 디자인 등의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 더불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건 뭘까?'라는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중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으로 강연을 하나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걸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까?'라는 측면에서 강연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과학 공학을 주제로 강연을 했기 때문에 지식을 이해하고 있는 측면에서의 필연적인 한계가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강연 외의 교육이나 디자인 등의 다른 분야들 같은 경우에도 '완전히 못한다' 이런 건 아니었지만 '정말 그 분야에서 내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가?'를 봤을 때 그럴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이것저것 관심을 많이 갖다 보니 무언가에 팍 꽂혔다가 금방 질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내가 해왔던 걸 하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요.
고민을 하다 보니 이게 결코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어요. 물론 제가 기계공학을 썩 잘 해내 오긴 했었지만 엄청나게 잘했거나 타고난 센스가 있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빠르게 성장하고 나아지는 과정을 거치고 싶었는데, 기계공학이 너무 어렵고 양이 많아 진전이 더디다 보니 학문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것들을 경험하다 보니 '아 이거는 기계공학에 대한 나의 적성의 문제라기보다 모든 것에 해당되는 얘기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얼 해도 비교적 어느 수준까지는 빨리 올라가는데 그 이후로는 다 되게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시에 저는 직업적으로 '이게 아니면 안 하겠다, 난 꼭 이걸 해야겠다'라고 했던 그런 신념이나 꿈같은 게 없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무엇이 되었던 잘하고, 성장하고 있고,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시간을 많이 쏟았던 분야인 과학과 공학을 하는 것, 그중에서도 과를 바꾸지 않고 해왔던 기계공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일하게 대충 하겠다 이런 느낌은 아닙니다. 저는 대학원이 일종의 훈련 과정이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공학자로서의 능력치를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에게 다소 부족한 참을성을 그 훈련 과정 동안 길러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제가 앞으로 연구를 하면서 겪을 많은 희로애락과 자주 찾아오는 조급함, 그리고 다른 뛰어난 분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요. 좋은 논문을 내고 좋은 연구를 하고, 다양한 것들을 많이 배워서 제 다음 스텝에 대해 결정할 때 '이 과정이 정말 후회가 없었다, 다시 하라면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보다 많이 방황했고 경험했으나 결국에는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동기들은 바로 칼같이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동기들에 비해서 어차피 늦은 거 천천히, 제 템포대로, 조급해하지 않고 하루하루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학위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들이 엄청나게 뚜렷한 성과를 남기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선택지들을 감사하게도 뜻했던 바를 다 경험을 해보면서 '앞으로 이 길로 나아가는 게 나한테 가장 좋겠구나'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믿어요.
다시 한번 조급해하지 않고, 기계공학이라는 매력적인 분야에서 제가 문제를 잘 정립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까지, 석사 과정까지 일지 박사 과정까지 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잘 나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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