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를 졸업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이후에 연구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석사 연구 주제는 생애 첫 1 저자 논문으로써, 국가 과제에서의 연구는 3 저자 논문으로써 국제 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1 저자 논문은 연관된 학회에 초청을 받아 다가오는 4월에 미국에서 포스터 발표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대학원에 입학하며 논문도 내고 학회도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가졌었는데, 졸업 후에라도 이룰 수 있어 참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이쯤 되니 왠지 박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쩌면 해외 유명 연구실에 합격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석사 학위와 함께 총 3개의 논문을 출판했고, 현재는 산업에서 상품 연구 개발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파급력이 큰 연구들을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유의미한 경험으로 박사 과정을 잘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인상은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감도 많이 붙었고요. 회사에서의 경험 또한 연구를 한다면 필요한 시스템을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겁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박사 과정 진학은 고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석사로도 아쉽지 않고, 박사 과정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요. 분명 논문을 발표하는 연구도 재밌습니다. 최근에 제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걸 직접 보니 최소한 학계에서는 의미가 있는 연구로 느껴져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학계보다 사람에 가까이 있는 산업을 더 좋아합니다. 당장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 목표를 위해 사람들과 부딪히고 고민하는 과정이 더 즐겁습니다. 연구자보다는 공학자로서의 기질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남들이 풀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에 집중하는 연구자보다는, 세상의 필요를 발견하고 채우는 것에 집중하는 공학자로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물론 석사만 하기에는 아쉽지 않냐는 질문은 계속 들려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스로부터도 말이죠.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누구나 누릴 수 없는 좋은 기회이고, 해외에서의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 학위가 있으면 모르긴 몰라도 든든할 것이며, 박사를 받으면 산업에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가능성입니다. 반드시 고점에서의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때, 저점을 마주해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기질과 능력을 냉철히 바라보면 학계보다는 산업에서의 저점이 더 높다고 믿습니다. 뒤늦게 마주한 석사에서의 결과물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 당시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했으니까요.
집중하는 삶을 살아갈 겁니다. 수많은 가능성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을 위한 삶을 살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기록은 달콤한 가능성을 포기하겠다는, 주체적으로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조건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도 상황도 계속 변하니 좋은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결정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당분간은 그럴 겁니다. 당분간은 석사로도 아쉽지 않고, 박사 과정으로는 진학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