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부리면 힘들어
힘듭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참 힘들어요. 회사에서 3주 동안 중요한 시연이 반복되어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몇 번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 와중에 몇 달 전부터 받아오고 있는 스트레스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조직의 인사는 달라진 게 없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진 않을 테니 큰 변화가 없을게 당연하죠. 꾸역꾸역 버티는 와중에 간신히 추석을 맞이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탓일까요. 본가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먹고 기절할 듯이 자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습니다. 쉬는 것도 애써 생각을 떨쳐내야 쉴 수 있다는 게 참 씁쓸했어요.
그렇게 잘 쉬는데도 가슴이 종종 아팠습니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이겠죠. 이 스트레스에 대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 저를 괴롭히고 있는지 충분히 다각도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논리적인 답변들도 꽤 많이 정리해 두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왜 계속 아플까 괴로운 마음을 붙잡고 생각해 보았어요. 아직까지 제가 해결하지 못한 게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제 고집이었습니다.
많이 고민했고 행동했는데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저의 행동이 그동안 제가 편하거나 자연스러웠던 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저는 제가 속한 팀이 세계 그 어떤 팀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효율적이고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팀이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각자의 경험과 재능을 최대한으로 펼칠 수 있도록 모두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항상 최고의 결과를 위해 도전하고, 그것을 위해 각자의 의견이 팀의 의견으로 합치되기를 바랍니다. 실패했을 때는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실패를 복기해서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고요. 누군가에겐 참으로 이상적이고 심지어는 숨 막히기까지 한 조건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고집을 아직 꺽지 못하고 있었어요. 지금의 팀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만들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은 채로 제 행동과 생각들을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그럴 수 없는 환경인 것을 잘 압니다. 저에게는 인사권이 없고, 그걸 추구할 수 있을 만한 직책도 없어요. 구성원들을 제가 선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가 지금 이상으로 더 노력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설령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고 해도 팀원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입니다. 팀원들의 마음과 행동이 제가 원하는 대로 쉽사리 변한다면 저는 인간이 아니라 신일 거예요. 지금 제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아는데도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슬함이 느껴져서였어요. 당장 직전의 생각에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었다고 반성했음에도, 거대한 관성 같은 스스로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단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상황에 집중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집이 날을 세워 스스로를 조급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순간의 감정들에 집중했어야 했어요.
세상은 원래 한 사람의 뜻대로 잘 안됩니다. 그래서 고집부리면 참 피곤해져요. 이렇게 명백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거스르려고 해서 제가 이렇게 피곤하고 지친 것 같아요.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게 포기한다는 것이 아닐 텐데, 그동안 해왔던 생각과 행동의 관성이 커서 쉽게 바꾸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다짐을 넘어서 고집을 꺾어야 하는 정도의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어려움에도 중요한 문제이니 지금의 제가 해결하기 위해 가장 많이 애써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유연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야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편안해지기 위한 모든 노력이 고집에 부딪힐 것 같아 쉽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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