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쓴 지 곧 있으면 5년 차가 됩니다. 기록 자체에 집중하려고는 하지만, ‘누군가가 봐주고 공감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저의 조급한 성격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의 성장세는 아니어도, 여러 지표들은 점진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았어요. 한 잡지사로부터 글을 실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개인적인 인연으로 요청을 받아 글을 써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오롯이 글로써만 요청을 받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청을 주신 편집장님께서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편집장님 입장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셨겠으나, 평소에 흔히 불리던 호칭이 아닌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린다는 게 참으로 낯설고도 신기했습니다.
분량의 제약을 제외하면 완벽히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감사한 조건이었습니다. 주제 또한 그러했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꽤 길었습니다. 단순히 주제에 대한 고민만 하는 줄 알았는데 기교를 부려볼까, 색다른 걸 시도해 볼까 등 평소에 하지 않던 고민들이 이어지더라고요. 처음으로 청탁받은 원고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작가라는 두 글자의 호칭에 부담을 느낀 걸까요. 더 잘 보이거나 그럴듯한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하는 제 자신을 알아채니 상당히 멋쩍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써왔던 글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죠.
결국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일상을 겪었을 때 드는 생각과 감정을 남겨왔기에, 그런 글을 쓸 때 가장 자연스럽고 호소력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일상이라는 건 반복되다 보니 때때로 저의 글 또한 되풀이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순간마다 느끼는 것을 새롭게 상기하며 표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같은 일상이었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 제 글의 특장점이자 한계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른 종류의 글을 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이것으로 소소하게 즐거워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감사히도 저의 첫 기고는 편집장님의 큰 피드백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인적이지 않은 곳에 저의 개인적인 감상이 공유되는 첫 번째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잔잔했던 일상에서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니 설레면서도 기쁩니다. 이는 분명 지금껏 저의 기록을 오랫동안 지켜봐 주신, 지금 이 순간에 제 목소리를 함께해주고 계신 당신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남길 수 있게, 그리하여 당신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게 제 스스로를 잘 다독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