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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Apr 09. 2024

리얼원트의 환상

코칭 목표 합의

다 쓴 뒤 덧붙이는 말


어쩌다 보니 코치들끼리나 모여서 나눌법한 그런 얘기가 되어버렸다. 혹시 '리얼원트'라는 제목에 이끌렸다면 이 글은 여전히 리얼원트를 찾아 헤매는 코치들의 고군분투기에 불과함을 서두에 미리 밝힌다.




저 갑자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긴 대화 끝에 K가 물었다.


네, 뭐든요.


약속된 시간이 거의 마무리될 쯤이었지만 진짜 궁금하다니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히 고마운 고객에게 돌려주는 일종의 ‘서비스’였다고 생각했다.


코칭을 받으러 올 때, 고객이 이미 목표를 가지고 오잖아요.

근데 굳이 다시 목표를 합의하는 이유가 뭐예요?


아뿔싸, 여태껏 왜 하는 도 모르고 그렇게 정성껏 공을 들였다는 건가? K는 사내에서 운영하는 코칭 프로그램을 기초과정으로 이수하고 지난 달 처음 내게 코더코*를 의뢰해왔다. 그러니 이제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변명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K는 곧 사내코칭시연을 앞두고 있다고 하질 않았나. KAC심사기준에 맞추어 코칭대화를 전반적으로 검토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라는 변명이 뒤이어 떠올랐다).


* 코더코 : 상위코치에게 코칭 시연을 보이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 한국코치협회기준, KPC응시를 위해서는 상위코치로부터 최소 5시간의 코더코를 이수해야한다.


국제코칭연맹ICF의 자격인증을 위한 최소기술요구사항minimum skills requirement 에 따르면 ACC 코치에게 요구되는 계획수립과 목표설정에 관한 평가대상 핵심기술Key skills evaluated 수준은 아래와 같다.

ACC Key skills evaluated
1) 코치는 고객이 생각해 낸 목표를 최대한 확실하게 채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2) 계획과 목표수립은 일차원적이고 코치는 때때로 고객의 전문성대신 자신의 전문성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다.

KAC취득를 위한 단기 코더코에서는 코치와 고객이 목표를 합의하였는지의 여부만을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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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코치협회KCA에서 '코칭 합의'에 관하여 공개한 심사기준은 KAC/KPC/KSC 모두 아래와 같이 동일하므로 기술수준의 비교를 위하여 ICF기준을 함께 정리하였다.

1) KAC 심사항목 5번. 전문계발- 코칭 합의 - 코칭 주제와 목표를 명료화하고 합의하였다.
2) KPC 심사항목 5번. 전문계발- 코칭 합의 - 코칭 주제와 목표를 명료화하고 합의하였다.
3) KSC 심사항목 1번. 전문계발- 코칭 합의 - 코칭 주제와 목표를 명료화하고 합의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 말고도 놓치고 지나간 중요한 이슈가 많았다. 코치다운 질문과 피드백으로 우아하게 선심을 쓰려던 마음은 어느새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고, 마치 K가 내게 '이 중요한 걸 왜 여태 왜 말해주지 않았냐'라고 따져 묻기라도 한 듯 속사포 대답을 이어나갔다. 어떤 일에서건 능력밖의 과도한 책임감은 핑계와 변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사실 중언부언 말이 길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코칭 주제와 목표합의에 관해서라면 내게도 결코 호락호락한 주제가 아니다. 이제껏 수없이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여러 멘토코치로부터 수십여 차례의 슈퍼비전을 받고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아직도 내 발목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한 대답일것이다.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기준이라면 이제껏 들은풍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은 내게 늘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나의 우유부단함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이유로 여기에 질문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정리하여 적지 못함에는 양해를 구한다. 다만, 기술수준을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국제코칭연맹ICF의 MSR을 함께 정리한다.


국제코칭연맹ICF의 최소기술요구사항minimum skills requirement 에 따르면 최고등급 MCC 코치에게 요구되는 계획수립과 목표설정에 관한 평가대상 핵심기술Key skills evaluated은 아래와 같다.


MCC Key skills evaluated

1. 코치는 고객이 작업하기를 원하는 것을 고객과 함께 완전히 탐색한다.

2. 고객과 협력하여 주제의 중요성,성공척도 및 코칭 대화의 방향 변화를 철저히 탐구한다.

3. 코치는 파트너모드의 대화를 통해 코치와 고객 모두 주제,성공 척도 및 논의해야 할 이슈에 대해 명확히 알수 있도록 한다.

4. 코치는 고객의 지시가 없는 한 코칭 내내 해당 주제와 조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5. 코치는 고객의 목표가 달성되고 있는지,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과 프로세스가 지원되는지 고객과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Don't

1. 고객과의 완전한 파트너십이 입증되지 않은 경우

2. 코치가 고객을 위해 주제를 선택하거나, 코치가 고객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코칭하지 않는 경우

3. 코치가 세션에 대한 고객의 의도나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까지 각 주제에 대한 성공방안을 고객과 함께 탐구하지 않을 경우

4. 코치가 세션에서 고객이 지정한 목표와 관련하여 논의해야 할 문제에 대해 고객이 완전히 관여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경우

5. 코치가 고객에게 세션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코칭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Q. 코칭을 받으러 올 때, 고객이 이미 목표를 가지고 오잖아요.

근데 굳이 다시 목표를 합의하는 이유가 뭐예요?


A. 그것이 고객의 진짜 목표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코치와 고객이 주제와 목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합의는 없고 확인만 있으면 고객은 피상적인 목표문을 반복하게 되고, 코치의 탐험가정신이 지나칠 때 고객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이 날 고객에게는 시간양해를 구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여기에는 그중의 일부를 정리하여 적는다.




리얼원트의 환상



REAL want 진짜 원하는 것. 말 그대로 말과 행동 너머 고객이 진짜로 원하는 ‘무엇’이다. 대개는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 대신 '리얼원트'라고 부르고 있어서 그대로 따라 쓴다. 코칭에서 고객의 리얼원트real want를 찾는 것은 코칭성과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목표를 합의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 목표에 대한 고객의 동기가 충분히 높아졌는가를 확인하는 것인데 그 때 리얼원트와 목표를 연결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다만, 처음부터 고객의 말과 행동에 숨겨진(?) 무언가에 대하여 재차 캐묻거나 고객을 내면탐색에 서툰 사람으로 섣불리 오해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령, 이번에는 기필코 살을 빼겠노라 다이어트 코칭을 받으러 온 고객에게 코치가 시시콜콜한 이야기 몇 마디를 건네고는 (마도 성공적인 라포를 끝낸 후)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초장부터 진을 빼놓는다면 이보다 더 난감한 일도 없다. 고객이 지금, 여기서 코치에게 기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기필코 살을 뺄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던져진 미끼*를 덥석 물라는 것은 아니다. 코치로서의 전문성_고객의 내면탐구_을 염두에 두고 한 달 만에 살을 한 10킬로는 빼겠다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간절히 원하게 되었는지, 혹시 무슨 계기라도 있었는지, 만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주제라면 코칭을 받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묻고 답하면서 고객이 가져온 목표는 점차로 진짜 ‘고객의 것’이 되어간다.


'목표합의' 과정은 코칭대화의 초점을 맞추고 S.M.A.R.T 하게 목표를 구체화*하는 것 외에 동기를 높이는 데도 아주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고객은 오랫동안 몰두해 온 목표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기도 하고, 반대로 의무감으로 허덕이던 일이 사실은 고객 자신도 간절히 원하는 것임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코치와 고객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거친 목표는 그동안 고객이 혼자 머릿속에서 정리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 설령, 고객이 처음 가져온 것과 똑같이 들린다 해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 미끼를 덥석 물다 = 고객의 초기목표를 그대로 합의하는 것과 관련한 흔한 코칭지침이다. 다만, 고객의 간절함을 미끼로 치부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 S.M.A.R.T 한 목표설정에서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 https://brunch.co.kr/@jinon/107 

* 자세한 내용은 동기이론 goal setting theory 를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B%AA%A9%ED%91%9C%EC%84%A4%EC%A0%95%EC%9D%B4%EB%A1%A0


이 때, 고객에게 당신이 삶에서 이루려는 진짜 목표가 뭐냐고 다그쳐 묻지 않아도 좋다. 코치자신도 늘 찾아 헤매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고객이 당장 내 눈앞에서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지나친 기대인지도 모른다. 온통 고객의 신경을 잡아끄는 그 일이 해결되고 나면, 혹은 그 간절함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고객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고 운이 좋으면 코치도 함께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이때 코치가 할 일은 고객의 목표를 차분히 따라가면서 저절로 궁금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질문의 가장 좋은 타이밍은 진짜로 궁금할 때, 호기심이 턱밑까지 차 올랐을 때다. 이 원칙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고객이 피상적인 주제에만 머물러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안타까운가? 고객의 리얼원트를 기필코 단박에 찾아내리라는 욕심을 내려놓는 그 순간, 지금 고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다.



리얼원트는 질문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며 느끼는 것이다.





출처 : 어빈 얄롬 /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실존주의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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