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인간이 가진 '소속의 욕구'다. 인류가 진화해 온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의 유전자에 무리 본능이 깊숙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위태로운 장면은 무리에서 떨어진 망아지와 맞은편에서 이를 응시하는 암사자의 투 샷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겨우 조랑말만 한 인간에게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 위협적인 사실이 대대로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수록 불안한 감정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본능으로써 눈치는 동물적인 차원의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진화했다.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이 제어되고 생존을 위해서 눈치를 살펴야 했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구성원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무리의 존속을 결정짓는 주요한 매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눈치를 '자기모니터링(self-monitoring)'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기모니터링(self-monitoring)'이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관찰하면서 행동을 조절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high self-monitoring)은 자신의 행동이 상황에 적절한지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따라서 상황이 변하면 행동도 달라진다. 반면, 눈치가 부족한 사람(low self-monitoring)은 맥락에 따라 자기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고맥락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는 '눈치'가 한 사람의 평판을 좌우하기도 한다. 맥락에 따른 융통성이 평판의 핵심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인간의 뇌는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던진다.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갈 것인가? 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도망칠 것인가? 이처럼 우리 뇌는 매 순간 '도전 반응'과 '회피 반응' 사이에서 갈등한다. 우리가 도전을 선택하면 주변의 모든 상황은 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으로 인식된다. 반면, 회피를 선택하면 사방이 경고등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만 정신이 쏠려 생각과 행동이 위축된다. 불안감을 조장하는 조직에서 뇌는 반사적으로 회피반응을 선택하게 된다. 융통성 있는 대처가 필요한데도, 회피적인 자동반사를 눈치라고 오해한다. 방어적으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게 되어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생기기 십상이다. 불필요한 각성 상태가 지속되어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는 소위 '나 때는 말이야' 식의 강압적 피드백은 이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성장하는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에는 '건강한 눈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상사의 불호령에 반사적으로 몸을사리는 것은 본능적 차원의 눈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서 상사는 자신만의 원칙을 뜬금없이 바꿔가며 과도한 눈치를 요구한다. 급기야 구성원을 눈치 없는 부하직원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맹목적인 눈치는 무능한 리더에 의해 이렇게 악용된다. 소통과 창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회사가 떠안게 된다. 조직이 유기체로 살아 움직이려면 서로의 성장을 위한 상호 간의 진정성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진정성의 원칙은 수평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진정성은 직관으로 느껴지는 유일한 감각이다. 성과를 독차지할 요량으로 눈치껏 일을 처리하거나, 남의 약점에 촉을 세우는 얕은 수는 금방 들통이 난다. 상대의 욕구에 민감한 구성원이 성장하는 조직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눈치다.
건강한 자기 모니터링(self-monitoring)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과정을 따른다. 리더는 순응을 강요하는 것을 멈추고,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상호 간 융통성 있는 맥락 읽기로 모니터링의 기준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