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기타왕

기타 좀 쳐요?

by 마케터초인


슈퍼마케터 3장 - 이 시대 기타왕


3.2







메일이 왔다.


[공지] 인사팀 1:1 면담 일정 안내


1대 1?

인사실장을 맡고 계신 상무님과의 1:1 면담이었다.

1년에 한 번.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피하고 싶은 시간.

연말 평가와 면담 시간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꽤 많은 일을 했다.


첫해와 다르게 노트북만 정리하던 신입이 아니었다.
데이터실에서 사람의 기록을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

눈에 띄진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

메일 하단에 작게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면담 전,
지난 1년의 성과와 함께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1년의 업무 정리,

그리고 내 일에 대한 생각?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면담실


오늘따라 인사실의 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상무님이 고개를 들었다.


상무님.

인사실을 총괄하고 계신 가장 높은 분,

단 둘이 말을 나눌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어, 인후 왔구나. 앉아.”


책상 위에는 내가 제출한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상무님은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올해 일, 많이 했네. 전에는 뭐 했다고 했지?”

“네. 자산관리 업무 하다가 통합 후에 평가보상 인사 데이터 업무를 맡아 했습니다.”


노트북 관리를 자산 관리라는 언어로 바꿔 말했다.


“자산관리. 그거 쉽지 않은 일이지.”


잠깐의 침묵.


“힘든 건 없고?”

“괜찮습니다.”


사실 괜찮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그건 이 질문의 답이 아니었다.

지난 1년은 나를 조금 더 사회에 맞게 바꿔놓았다.


상무님이 의자를 조금 당겼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 맞는 것 같나?”


이 질문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쭉 이 일을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술자리에서 꺼낸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케터들.
웃던 얼굴들.

“응원할게요” 라는 메시지.


지금..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릴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상무님. 사실은요.”


뭔가를 쓰던 손에서 펜을 내려놓았다.


“그래.”

“지금 하는 일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잠깐의 정적.


“조금 더 제 이름으로 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무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케팅 쪽을 생각해 봤습니다.
바로는 아니더라도, 다음 커리어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무가 웃었다.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네."

"지금 하는 일은 안 맞아서?"

"아니, 그게 아니라..."

“자네 요즘 힘들구만.”

“…?”

“그럴 때가 있어.
일이 잘 안 맞는 것 같고,
다른 게 더 좋아 보이고.”


상무님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도 그랬어.”


상무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그때가 가장 힘들 때야.”


그리고 서랍을 열더니 봉투 하나를 꺼냈다.


“한 이틀 쉬고 와. 머리 좀 식히고. ”


봉투 안에는 공연 티켓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 공연사업부에서 시작한 공연인데

이참에 바람 좀 쐬고.

그리고 올해. 고생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문을 나서며 알았다.


내 말은 ‘진심’이 아니라
‘푸념’처럼 들렸다는 걸.


회사에서 증명되지 않은 신입의 꿈은,

그저 피곤한 투정일 뿐이었다


나에게 남겨진 것은 공연티켓이 전부였다.






뜻밖의 휴가


뜻밖에 이틀의 휴가를 받았다.

물론 회사는 공짜란 없다.


연말평가 시즌 몇 달 내내 주말출근에 대한 보상으로

대체휴무라는 이름의 명분이었다.

지난 몇 달은 매일이 치열했으니.


윤과장님은 이참에 푹 쉬고 오라고 하셨다.

평일 낮, 텅 빈 집에 혼자 있다.

티켓은 책상 위에 올려뒀다.


이틀짜리 휴가.

어디 갈 계획도 없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티셔츠에 반바지.

회사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가벼운 옷차림인데
머릿속은 더 무거웠다.


상무님 앞에서 꺼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온 건 티켓 한 장이었다.


면담에서 이야기를 꺼낸 게 괜찮았던 걸까?

혹시 나중에 불이익이 있진 않을까?

혹시 윤과장님한테 뭐라고 하진 않았을까?


모르겠다.

일단 쉬자.


TV를 켰다.
채널을 넘기다 어느 음악 프로그램에 멈췄다.

우리 회사에서 하는 ‘뮤직넷’이라는 음악채널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안에서 두 남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지금 내가.. 저 먼지 같다.

아니. 난 사회의 첫날부터

날아가지 못하는 먼지였다.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내 조그만 공간 속에’


노래가 이상하게 가슴에 꽂혔다.

대학생 때의 내가 불쑥 떠올랐다.






[4년 전, 회상]


대학교 동아리방


형광등 불빛이 깜빡인다.
동아리방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책상 위에는
빈 캔커피, 다 먹은 컵라면,
종이들이 흩어져 있다.


나는 의자에 앉아
PC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광고공모전 공지가 보인다.

내가 속한 곳은 광고동아리, 애드드림.

이곳에서 대학교 4년 내내 공모전을 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4년 내내 떨어졌다.

‘초인후’라고 쓰여진 폴더 안에는
‘탈락’ 작품들이 폴더별로 정리돼 있다.


제삼기획 공모전 제출_1

제삼기획 공모전 제출_2

고려일보 공모전_최종

종근제약 공모전_진짜최종

TK텔레콤 마케팅 공모전_이게마지막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곧 졸업이네.

광고 공모전, 마케팅 공모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쯤 되면 재능이 없는 거지.


난.. 뭘 해야 할까?’




강의실 복도.
취업 게시판 앞.

은행, 대기업, 공기업 채용 포스터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포스터를 하나씩 본다.


‘은행을 알아볼까?
공기업도 좋다던데.

나도 자격증 같은 걸 준비해봐야 할까.'


핸드폰을 본다.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다.


‘아들. 요즘 취업 힘들다던데.

사촌형 이번에 공무원 됐다는데

한번 만나서 이야기 들어볼래?’


‘고맙지만 제가 알아서 할…’


답장을 쓰다 지운다.





곰 선배


동아리방 문이 열린다.


“인후.”


선배다.
항상 편한 차림.
늘 어딘가 여유가 없는 얼굴.


덩치가 크고 먹을 걸 좋아해서

곰선배라 불리는 형이다.


“졸업준비 잘하고 있냐?”
“네. 뭐 그냥요.”


선배는 다가와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인후야. 우리 마지막으로 공모전 하나만 더 할래?”


나는 고개를 든다.


“형, 우리 한 번도 된 적 없잖아요.”


알면서 하는 말이었다.

4년 동안 매번 같이 떨어졌으니까.


선배가 웃는다.
조금 씁쓸하게.

하지만 넉살 좋은 웃음이 이 선배의 무기다.


“그러니까.

졸업하면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
아쉽지 않냐? 이제 마지막인데”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아쉽냐고 물었을 때, 이상하게 그 말이 가슴에 걸렸다.


“마지막이네요, 진짜."

"우리 마지막.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볼까?"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딱, 한번만 더 해보기로.






마음대로


동아리방, 밤 10시.

종이 위에는
낙서 같은 아이디어들이 가득하다.


“야, 이번엔 우리 딱 한 가지만 정하자.”

“어떤 거요?”

“우리 마음대로 해보는 걸로.
클라이언트 생각 말고.
심사위원 눈치도 말고.

그냥 우리 마음대로.”


선배가 웃는다.


“어때?
딱 한 번쯤은 그러고 떨어져도 되잖아.

우리 맨날 예전 수상작 분석하고

요즘 유행하는 거 비슷하게 하고

별거 다 해봐도 안 됐잖아?”


“좋아요. 마음대로 갑니다 그럼.”


그렇게 내 인생의 마지막 공모전이 꺼내졌다.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마음 가는 대로.



프린터 앞.
출력물이 하나씩 나온다.

그 종이 안에는 우리의 이름이 담겨있다.


“짠. 광고물. 출력 잘 나왔지?

이거 특별히 비싼 종이에 했다.

마지막이라고 투자 좀 했지.”


그렇게 봉투 표지에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쓴다.

서류를 보내면서, 내 이름에 잠시 시선이 멈춘다.

봉투에 넣고, 접수함에 넣는다.


‘툭’ 소리.

매번 이때마다 설렌다.


내 대학생활의 마지막,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화가 왔다


그리고 2주 후,

졸업 준비로 분주한 캠퍼스.

캠퍼스를 걷다가 전화가 울린다.

모르는 번호.


“네, 여보세요?”

잠깐의 정적.

“...합니다.”

“..네?”


“고려일보 공모전 담당자입니다.”

…. 을 축하드립니다.”
통화를 하다가 걸음을 멈춘다.


“어디시라고요?”


누군가의 장난인가 싶어 한번 더 물어본다.

이 말을 다시 듣고 나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주변 소음이 순간 멀어진다.


“대상입니다.”


전화가 끊긴 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가방이 흔들리고, 숨이 찬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상관없다.


“아아아아아아!!!”


캠퍼스를 가로질러 뛰면서 소리친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 나한테 문을 열어줬다고 믿었다.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선다.

‘그래. 이거다.’

고개를 든다.


엄마에게 문자로 답장을 했다.

‘제가 정한 그 길, 계속 가볼게요.'


그날 내 꿈은 아주 명확해졌다.

공모전의 팀 이름 그대로.


슈퍼마케터.




[다시 현재]



..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던 걸까.

‘먼지가 되어’

노래가 끝난다.

심사위원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한다.


“그때는 선택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때도 내가 선택한 거였다.

왜 그때는 포기하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마음이 스쳐간다.

역시나..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했을 때,

비로소 심사위원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회사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흔들 수 있는 건 뭘까?


순간 조금 전 TV에서 봤던 ‘먼지가 되어’ 노래가 스쳐간다.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

감동한 심사위원들.

그리고 기타의 전율.


!

이거다.

미디어 회사.

콘텐츠를 만들고,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

여기에 반응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면담에서 나는 말했다.

‘마케팅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보기로 했다.


빠르게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함을 열었다.

손이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인다.





회사 모두에게


메일 제목을 썼다.


[모집] JJ미디어 컴퍼니 기타동호회


내용은 길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먼지가 되어’ 같은
나만의 인생곡이 필요한 분들께.

어쿠스틱 기타를 좋아하시거나
배워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기타동호회를 모집합니다.

실력 무관. 초보 환영.
관심 있으신 분은 회신 주세요.


그리고 ‘먼지가 되어’ 영상이 바로 보이도록 메일 첫 줄에 걸어두었다.

100만 조회수를 넘은 뜨거운 영상.

메일을 열자마자 노래의 감동이 바로 떠올릴 수 있게.


그날은 회사에서 동호회 모집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업무 메일이 아니다.

그냥 사람을 모아보자는 메일.


이게 뭐라고 손이 떨렸다.

메일을 쓰고 보내기 전에 몇번을 바라봤다.

보내기 버튼 위에 마우스를 멈췄다.


잠시 후, 클릭.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메일함 대폭발


2분.

5분.

10분.


회사 전체 메일을 보내고, 메일 알림이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저요!”
“완전 관심 있어요.”
“기타 초보인데 괜찮을까요?”


30분이 지나자 메일함이 미친 듯이 쌓였다.


50명.
70명.
100명.


너무 많은 신청자에 함께 올렸던 공지글을 [마감]으로 수정했다.

그러자 대기자까지 생겼다.

다들 어디 하나 기댈 곳이 필요했나 보다.

보낸 사람들의 부서 목록을 훑어보다가 문득 멈췄다.


tvM 마케팅팀.

뮤직넷 콘텐츠팀.

JJ스튜디오 마케팅팀.

JJ애니 해외마케팅팀.

유독 마케팅 관련 부서가 많았다.


‘먼지가 되어’는 엄청난 히트송으로 떠올랐다.

거리에는 기타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전 국민의 대인기 취미가 될 것으로 보였다.


이곳 미디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 그리고 그중에 특히 마케터들이.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모일 거라는 느낌은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3천명 회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동호회의 회장이 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만든 무언가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연결의 시간


동호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더불어 할 것도 많았다.


레슨을 하고,
회식을 하고,
MT를 갔다.


MT 첫날밤.

회원의 절반 이상은 마케터.

마케터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팀 요즘 진짜 힘들어요."

"사람이 계속 나가서… 맨날 손이 부족해요."


나는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일에서 드는 고민들.

그들이 각자 준비하고 있는 것들.

그들의 마케팅 이야기는 밤새 이어졌다.


나는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어디서 듣지 못할

생생한 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상했다.

회사에서는 들을 수 없던 이야기들이

술잔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직급, 부서 구분 없이.
그냥 같이 일을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서.


나는 그 자리에서

이 회사의 마케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처음으로 ‘사람’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다양한 부서의 마케터를 알게 되고,

자세한 마케팅의 일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진짜로 어떤 것인지 그걸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밤 10시에야 기타 레슨이 끝난 날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자리를 정리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tvM 마케터 우람님이었다.

지난 회의부터, 술자리까지 함께 했던 분.


레슨이 끝난 뒤, 회식 자리에서,

가끔은 사내 카페에서도.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가 섞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후님, 혹시…”


우람님이 말을 조금 고르다가 이어갔다.


“우리 팀에 자리 난 거 들으셨어요?”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아뇨.”


“회사 사정도 잘 알고,
내부 사람들도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필요하대요.”


머뭇거리는 내 표정을 보며 그가 덧붙였다.


“관심 있으세요?”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잠시 말을 멈추고 이어갔다.


“그 자리 혹시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그럼 제가 좀 더 알아보고 알려드릴 테니,

아직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가슴이 뛰었다.


원하는 것을 선택했더니

새로운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리며 생각했다.


마케팅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타를 치겠다고 메일을 보냈을 때는
세상이 답을 했고, 작은 일이 일어났다.


말과 행동은 달랐다.

그게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버스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첫날의 신입사원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같은지, 다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사회는 말만으로 설득되는 곳이 아니었다.

행동과 결과물이 중요한 곳이었다.





기타 좀 쳐요?

기타동호회 3기 신입 모임.


새로 들어온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동호회 회장님이시죠?”

“네.”

“와, 진짜요?
그럼 기타 엄청 잘 치시겠네요.”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동호회 멤버들이
나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저 기타…
한 번도 제대로 쳐본 적 없어요.”


정적.

그리고 폭소.


“뭐야ㅋㅋㅋㅋ”
“회장님.. 이거 사기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회장 된 거예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같이 배우려고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타를 치고 싶게 만들었고,

그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연주자는 아니어도,

그 무대를 기획하고 사람을 열광하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기초반에서 기타를 잡았다.

기타를 친다기보다 정확히는

띵가띵가 튕긴다는 표현이 맞지 싶다.


기타를 치고 나면 손가락이 아팠다.
소리가 삐걱거렸다.

그런데도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으로
내가 만든 선택 안에 있었으니까.


기타를 한 번도 쳐본 적 없는 내가
이 회사에서 가장 큰 기타동호회의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을 모을 수 있다는 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걸.


(3.3 - 선택하는 인간) 계속


슈퍼마케터 첫화부터 보려면?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