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599일 동굴에 갇히며 알게 된 것
[호랑이 동굴 생존기] 에필로그
숲에 역병이 돌았다.
동물들은 다 함께 살기 위해 각자 갇혀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동굴에 갇힌 날,
무려 599일이 지났다.
호랑이는 살아 있을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호랑이는 아직 생존해 있다.
아니 완전히 다른 호랑이가 되어 있다.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며 집이라는 동굴에 머물며 지낸다.
온갖 HMR을 쌓아놓고 먹다가, 가벼운 식생활에
눈을 떠 스몰푸드를 먹는 풀 먹는 호랑이가
혼술에 눈을 떠, 매일같이 다양한 술을 마시고 지내다가
이제는 술 대신 초코우유를 마시는 호린이가
온갖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지내다가, 직접 채널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방송하는 호랑이가
온갖 트로피칼 컬러별 패션템으로 매칭해 입어오다가
이제는 집복 하나만 입고 살아가는 벌거벗은 호랑이가
온갖 사람 관계가 디톡스가 되어 집으로 초대해
사람을 만나는 파티왕 호랑이가
그리고 집중도에 맞게 밤에 일을 하는 새로운 패턴,
낮에는 원기를 채우는 낮잠에 눈 뜬 변화,
매일 내려마시는 아침과 점심의 커피를 기다리는 루틴,
살아가는 생필품을 이리저리 조달하며 살아가는 일상까지.
사람과 관계 대한 생각,
일의 본질에 대한 철학,
미래에 대한 계획,
일상의 반복 루틴까지 송두리째 바뀌게 된 599일.
동굴에서 지내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온전히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
이 시간 동안 새로운 나를 끌어냈고,
새로운 나를 만났고, 새로운 나를 그린다.
좋은 변화로는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고
세상의 미움보다 관대함이 채워졌고
당장의 코앞의 작은 일보다는
미래의 중요한 일들을 더 마주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을 혼자 있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더 새기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매 순간이 기억에 남을 순간이요 반가움의 찰나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동굴에서 지내고 나서 느낀 한 가지는
누구나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정작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많은 이유가 바로 자기만의 동굴이 없고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없고
자기만의 동굴에서 지내는 시간을 즐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동굴생활이 599일을 넘어 700일, 900일이 넘어갈지
다시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모두가 뒤섞인 새로운 모습이 나올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시간 동안의 생각, 경험들이
평생에 걸쳐서 결코 잊지 못할 순간들이라는 것.
선조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지 못하고 동굴을 나갔지만
이 호랑이는 동굴과 세상을 모두 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여기 이 호랑이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