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 11월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양 옆의 차량과 앞의 담벼락 사이의 좁은 공간을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나갈 수 있도록 하여 직원의 칼퇴를 막는 (목적은 아니지만) 첨단 주차 시스템을 갖춘 나의 직장 주차장. 이 시스템은 10년을 운전해도 1년을 운전한 듯한 변치 않는 운전 감각에다, 쓸데없이 큰 차를 모는 나에게 칼퇴근 없는 (그러니까 옆 주차 공간이 빌 때까지 30분 연장 근무를 하게 하는) 근무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시내에 나갈 일이 있으므로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하기 위하여 칼퇴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확히 퇴근 시간에 컴퓨터를 끈 나는 옆 차나 내 차의 긁힘 사고가 오늘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나는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돌리다 옆 차 살짝 긁기, 옆 차를 피하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빼서 돌다가 돌담에 내 차 앞부분 살짝 긁기. 총 전과 2회의 경력이 있다.) 주차장에 나와보니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차량 두 대가 내 차의 양 옆을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나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차에 다가가는데, 이게 웬일? 여기에 더하여 연두색이 너무 고와 귀엽기까지 한 커다란 사마귀 한 마리가 내 차 앞바퀴 옆에서 글러브 낀 권투 선수처럼 앞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히 서 있는게 아닌가? 이 좁은 주차 공간에 사마귀의 방해까지! ( 이날 볼 일이 휴대폰 수리였기 때문에 이 멋진 장면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작은 미물의 생명(그것이 모기라 할지라도) 하나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소심한 생명 제일 주의자인 나는 차를 탄 채 10여분간 고민에 빠졌다.
'옆 차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차 안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가? 언제 나올줄 알고? '
'아니면, 벌레를 살짝 들어 올려 멀리 던져야 하나? 아, 나는 벌레를 만지지 못하는 벌레 공포증이 있지 않은가? 더구나 커다란 사. 마. 귀. 라니... 절대 안 될 일이야.'
'이 난제를 푸느니, 차라리 고등학교 때 머리를 책상에 박으며 괴로워했던 미적분을 푸는 게 더 낫겠다.'
'이 순간 내 양쪽 차 주인 중 한 명이라도 얼른 나와주면 딱 좋겠는데'
'그래... 결심했어!! '
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렇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한 후, 사마귀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기로 최종 결심했다.
'사마귀야, 내가 아주 아주 천천히 차를 움직일 거야. 그러니 너는 차 시동 켜는 소리가 들리거든, 얼른 내 차 밑 공간이나 옆 차 쪽으로 풀 숲에 뛰어들 듯 폴짝 뛰거라. 나는 나의 길을 이제 가야 하니 이제 너의 운명은 너의 손에, 아니 너의 장딴지에 달렸다. '
나는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한 껏 내밀어 봤으나 사마귀의 모습은 운전석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마귀가 도망갈 시간을 충분히 주려는 마음으로 아주 천천히 핸들을 돌리면서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앞뒤로 여러번 왔다 갔다 하여 겨우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물도 인간의 기준이 아닌, 자연의 기준에서는 각자의 묵직한 생명의 무게로 자신의 우주를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한다.
조금씩 생명의 기운이 옅어져 가는 11월의 쓸쓸한 자연이지만 땅에 떨어진 낙엽 아래서, 고목의 나무껍질 속에서 작은 생명의 힘들이 묵묵히 늦가을의 허무를 이겨내고 내년 봄, 기적을 움 틔울 것임을 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나는 사마귀 한 마리가 영문도 모르고 내 차의 바퀴에 무참히 스러지는 일 없이 자신의 집을 찾아갔길 기도하며 노란 은행잎이 날리는 도로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