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아, 이게 무슨 일이고?"
방금까지 음악을 들으며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던 나는 무심코 받은 대학 동기의 전화에 왈칵 울음이 쏟구쳤다. 겨우 울음을 삼킨 나의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건조했다. 동기 모임 커뮤니티에 부고를 올리고 굳이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담담히 설명하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위로의 말을 공허하게 서로 주고받은 후, 나는 황망히 전화를 끊고서야 참았던 울음을 토해낼 수 있었다.
며칠간 눈물로 가득 찬 속내를 누르고 웃음 띤 일상을 살아내자니 발이 허공에 떠 있는 듯 몸과 마음이 휘청거렸다. 어제는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려서 퇴근길 차 안에서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실컷 쏟기로 결심하고 한참을 울었더니 신기하게도 두통이 멈췄다. 그리고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훅 들어오는 J에 대한 전화는 나를 바로 눈물바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나싶게 다시 음악을 들으며 저녁 준비를 계속하면서 자연스러운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J를 기억하는 나의 아픈 가슴은 딱딱하게 굳어갈 것이다.
나는 석양이 지는 11월의 을숙도 하늘을 사랑한다.
저녁 6시를 전후로 을숙도를 지나는 나의 퇴근 차량 안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드는 서쪽 하늘 위로 회색 하늘이 살포시 얹혀 있다. 그 회색 하늘을 V자형의 곡선으로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겨울 철새 무리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아늑해진다. 그 11월의 하늘을 나는 이제 미소 지으며 바라보지 못한다. 철새가 지나가는 그 하늘 너머로 J의 웃는 얼굴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던 11월의 을숙도 저녁 하늘은 슬프게 여위어 갔고, 이제는 어둠이 일찍 내려 나의 퇴근길 하늘은 철새도, 노을도 없는 암흑의 12월이 되었다. 그렇게 J에 대한 나의 슬픔도 잦아들었다.
<11월>
11월은 철새의 계절
철새가 강을 건너면
서쪽 하늘 가득히 번지는 너의 미소
가난이 추웠던 나의 20대에
너는 내게 뜨거운 채움이었어.
헐벗고 부끄러웠던 나의 마음을
너는 언니처럼 껴안았지
시간의 배가 데려다준
어른의 강 한가운데서
단 하루를 잠들었건만
20년의 세월이 우리를 덮었구나.
하루 같던 20년이 흐른 후
다시 온 시간의 배를 타고
너를 찾아갔지
거기서
수줍게 웃는 너를 보았어
너의 사진 속 고운 눈매 그대로
20년 전의 네가 곱게도 앉아 있었어.
미소 띤 스무살 너의 딸아이를 그렇게 보았어
꼬맹이 아들 녀석은 왜 그렇게 귀여운 거니
너의 보석이었을 것이 훤히 보이더라
너는 기억 너머로 철새처럼 떠났지만
11월이 되면
너의 따스한 미소와 함께 철새가 돌아올 거야.
그렇게 너는
내게
11월이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