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한 여름에서 바로 겨울로 날아가지 않는 이상, 가을을 살다가 겨울을 좋아하기는 정말 어렵다. 발에 채이는 가을 단풍과 청아한 가을 하늘이 어제처럼 아른거리는데 내 살을 할퀴는 겨울바람을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 더구나 오후 6시 무렵 나의 퇴근길을 환영하던 강변 앞 주황색 저녁놀의 아우성과 주말 오후 햇볕 아래 따스한 강변 산책의 즐거움도 다 떠나버린 이 겨울을 나는 결단코 예뻐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낙동강변 산책에 봄, 여름, 가을 9개월을 빠져 살아도, 찬 바람 몰아치는 낙동강변에서의 겨울 산책은 사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겨울을 여름보다 사랑한다.
여름이 되면 더운 한 낮을 피해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거리에는 가벼운 옷차림만큼 마음도 가벼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축제의 계절이다. 거리뿐 아니라 바다와 산에도 사람들의 요란한 즐거움이 가득하고 나도 그 속에서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오후 5시부터 어둠이 깔리더니, 저녁 6시면 컴컴해져 사람들은 어둠과 추위를 피해 쫓기듯 건물로,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찬 바람만이 가득한 거리는 을씨년스럽고, 그 휑한 거리의 앙상한 겨울나무를 꽁꽁 묶은 화려한 꼬마전구들이 반짝거리며 짐짓 화려한 밤거리를 만들어 보지만 겨울밤 신도시의 외로움은 더욱 도드라질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외롭고 추운 겨울 밤거리가 좋다. 마치 황무지의 어느 별에 떨어진 지구인처럼 외롭고 쓸쓸해지면서 나의 실존이 쨍하고 깨어난다. 자연의 풍요로움에 잊고 있던 나의 내면이 심연 위로 고개 들고 올라오며 그 속에 담긴 삶의 허무에 몸서리치는 나를 느끼는 순간의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겨울 한낮 커다란 창과 하얀 커튼을 넘어 들어오는, 지구인으로서 받는 특별한 축복, 포근한 겨울 햇살!
겨울 한 낮 따스한 햇볕 잔치 중인 방내가 황무지의 어느 별이 아니라, 따뜻한 지구별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1억 5천만 km 거리에서 날아오는 태양의 선물, 햇볕의 따스함.
그 어느 계절도 이런 뿌듯한 따뜻함을 내게 주지 못한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겨울을 충분히 좋아한다.
(사족)
그러나 추운 겨울이 힘든 이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조금씩 우리 모두 마음을 나눠 함께 행복하길. 태양의 축복이 이들에게 더욱 빛나길 이번 겨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