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50대

50대의 열정은 못 말려

by 연구하는 실천가

오늘도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일이 마무리되었다. 불 꺼진 캄캄한 복도를 지날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허겁지겁 자리를 정리하다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방이 안 보인다. 뭐 특별한 일은 아니다. 거의 매일 나에게 벌어지는 일상이므로. 하지만 오늘처럼 퇴근을 앞두고 알아챈 것은 처음이다. '오늘은 내 가방을 어디에 둔 것일까?' 머릿속으로 오늘 나의 동선을 떠올려 본다. 연구실, 급식실, 영어실, 화장실. 그 순간 가방의 행방이 퍼뜩 떠올랐다. 개인정보 연수를 듣기 위해 3시간 전 갔던 5층 소프트웨어실.

그곳에 내 가방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낭패의 기운이 몰려온다. 분명 이 시간 그 교실은 꽁꽁 잠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무실에 열쇠함이 있기는 하지만, 교무실도 이 시간이면 대개 잠겨있다. 가방 속에 차 키가 있는데 나는 집에 어떻게 가야 하는 걸까?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자 컴컴한 계단을 휴대폰 손전등으로 비추며 5층 소프트웨어실에 가 보았으나 예상대로 잠겨 있었다. (규정을 잘 지키는 김 선생님이 오늘따라 야속하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층 교무실까지 겨우 겨우 내려 보았다. 감사하게도 교무실은 잠겨 있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열쇠를 챙긴 나는 다시 캄캄한 복도를 따라 5층으로 갔고 드디어 문을 열고 나의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1층 교무실 열쇠함에 열쇠를 두고서야 고대하던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이런 나의 에피소드를 전하자, 나와 동년배인 그녀가 나에게 한 마디 던진다.

'나이 먹은 티 내지 마라고 했제.'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며칠 전 학년 배정 결과에 대해 교장선생님에게 들은 다음과 같은 우려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 박부장. 내년에도 나이 많은 사람들만으로 학년 구성이 되어서..., 우째 괜찮겠나?"


학교는 학년말이 되면 내년 학년 구성을 준비한다. 소위 일할 사람이라 불리는 젊은 교사가 학년에 적당히 1~2명씩 고르게 들어가도록 관리자는 애를 쓴다. 올해 우리 학년은 50대 두 명, 50을 앞둔 두 명(나 포함), 20대 초임 교사 한 명, 이렇게 총 다섯 명으로 나이대가 다른 학년에 비해 상당히 높다. 그리고 학년 초 각자의 성향과 소신이 다르다 보니 서로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며 분위기가 싸해진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다른 색깔을 파악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정이 듬뿍 들었다. 그래서 50대 한 명, 곧 50인 나를 비롯한 또 한 명, 이렇게 총 3명이 내년에 다시 같은 학년을 하기로 했다. 의도적으로 함께 같은 학년을 희망했다는 것을 모르는 교장선생님은 부장인 나에게 나이 든 사람만으로 학년을 짜 주어 미안하다는 말투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교장실에 다녀온 나는 그 두 선생님께 '우리 나이 많다고 교장선생님이 걱정하더라'라고 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의 에피소드를 들은 나의 동료는 건망증으로 소지품을 잘 못 챙기는 나의 모습에서 나이 많은 티가 나서, 교장을 불안하게 한다고 그렇게 우스개 소리를 한 것이다.


나는 의식 못한 나의 나이를, 관리자인 교장은 나이 든 교사로 파악하고 학년 배치에 있어서 고려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씁쓸한 기분에 한 동안 멍해졌다. 승진 안 하는 50대 교사란 학교에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학부모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50대 교사에 대한 이미지.


하지만 나는 이 분들과 함께 할 내년 우리 학년의 모습이 너무나 기대된다. 나는 이 두 동료의 열정을 일 년 동안 보며 감탄했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서 늦게 퇴근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 두 분의 퇴근 시간은 나보다 빠른 적이 거의 없었다. 거의 모두 퇴근한 캄캄한 학교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두 교실을 복도에서 바라보자면 벅찬 마음이 일었다. 이 분들은 학교 업무를 느라 늦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업무를 본 후, 퇴근 시간 이후에야 수업 연구를 하시는 것이다. 나는 '이 분들과 내년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다'기대를 비추었는데, 고맙게도 그러자고 하셨던 것이다. 더구나 올 2학년, 그러니까 내년 3학년들이 유별나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분들과 함께 할 팀워크가 있다면 내년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고 다양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본다. 런 불타는 50대들의 반란을 교장선생님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3층을 가야 하는데 무심코 4층을 눌러버렸다. 우리 집이 4층이다. 허겁지겁 다시 버튼을 누르는 내 귓가에 그 동료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 나이 든 티 내고 다니지 말라고 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