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을 앞둔 교사가 사는 법, 다중인격

by 연구하는 실천가

나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며 최대한 밝게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얘들아, 안녕!"

몇몇 아이들이 돌아보며 힘없이 인사를 받아준다.

"안~녕~하세요."

그나마 이들은 고마운 녀석들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떠든다고 나에게 관심조차 없다.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뭐 괜찮다. 내가 뭐 인기 절정 미모의 20대 여교사도, 우스개 소리 잘하는 패기 넘치는 30대 남교사도 아닌 부스스한 머리를 노란 고무줄로 질끈 묶고 등장하는 쉰을 코 앞에 둔 펑퍼짐한 아줌마 교사이니.


매일마다 아침에 올 때 해피 스마일 교사가 되겠다고 기도와 결심과 다짐과 각오를 단단히 다졌건만, 오늘도 폭발하고 말았다.

어제 오후 3학년 전 선생님을 경악시킨 두루마리 휴지 뭉치로 화장실 변기 두 개를 막아버린 사건의 주인공이 역시나 우리 반 개구쟁이 대장 Y군인 것이 오늘 조사 결과 밝혀졌기 때문이다.

부르르 끓어오르는 화를 진정하고 불러서 차분히 이야기하니, 연관성이 전혀 없는 엉뚱한 이야기와 다른 아이들 탓으로 일관해 나의 화를 북돋운다.

결국, 내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Y군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약속을 Y와 하고 집으로 보냈다.

폭풍이 지나간 듯한 텅 빈 교실에서 나의 감정을 조절 못한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며 폭탄 맞은 듯한 내 책상 위를 정리하다 보니, J가 아침에 슬쩍 준 편지가 보였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두어 번 감정을 폭발한 J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글씨도 알아보기 힘든 외계어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자신의 마음과 나에 대한 감사를 한 바닥 가득 예쁘게도 써 놓았다. 방금까지 울화로 가득 찼던 나의 이 또다시 감동으로 격변하며 꽃사슴 같은 눈망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내 책상 앞 책꽂이에 잘 보이게 꽂아놓았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다행히도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싶어, J에게 고마움과 사랑스러움이 차오른다. 내일이 되면 또 J의 언행 때문에 열이 오르고 자칼의 포효를 J에게 내지를지도 모르지만.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사흘 전 전학 간 U군.

U군은 자신의 마음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말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않고 수업시간에 사라지기 일쑤이고, 등교시간도 제 마음대로라서 학교에서 모르는 선생님이 없을 정도였다.(올해 우리 반은 정말 파란만장하다. 음.) 그래서 전학을 가게 된 날 주변 선생님들이 나에게 오히려 덕담을 건네기까지 했다. 그래도 갑자기 훌쩍 가버려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전학 간 날부터 문자가 온다. 매일같이.

나는 그 녀석이 이전 학교에 대한 정을 떼고, 거기서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녀석은 매일같이 문자를 보낸다. 그 전에는 나에게 눈길도 안 주던 녀석이.

"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 "그래 계속 잘 지내라. 선생님도 응원할게."

"선생님. 저 오늘도 잘 지냈어요." " 그래, 네 말을 들으니 기쁘다. 잘 지내라."

"선생님, 저 오늘도 잘했어요." "그래, 앞으로도 계속 잘할 거지? "


그래서 오늘 퇴근하는 마음은 가볍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한 Y는 자신의 행동이 그저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할 뿐 어떤 악의도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한지 분명히 알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조금씩 배워가야 한다. 그것은 어른들과 사회의 몫이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 권리의 문제가 과거에는 정말 도외시되었다.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미명 아래 얼마나 함부로 대했나.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을 어른과 마찬가지로 존중하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다만 주어진 권리만큼 분명한 책임감도 심어주어야 한다. 존중하되 분명한 표현으로, 어리지만 아이들도 설명해 주면 안다. 그리고 조금씩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처럼 무조건 다그치면 오히려 마음속에 분노만 쌓일 뿐이다. 그렇다고 어리니까 가볍게 넘어가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책임의 무게를 간과하게 되어 버린다. 지금의 교육은 그 과정 속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도, 가정도, 학교도 그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Y는 분명 조금씩 자신의 행복과 책임감의 접점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는 나의 다중 인격은 좀 더 적절하고 다양하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그 속에는 따뜻한 기린의 품으로 아이들을 껴안을 준비를 하면서.


그래도, 예쁘고 착하다. 우리 반 말썽꾸러기들!!

50을 앞둔 늙은 아줌마 교사는 아이들에게 인기 절정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여전히 인기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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