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의 슬픔
차 안에서 한 손에 안경을 들고 있어 다른 한 손만으로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을 좀 보려니 상당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안경을 쓰자니 1미터 이내의 글씨가 안 보이고, 안 쓰자니 1미터 이상이 안 보인다. 안경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내게 충격적인 노안이 왔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준 사건은 2년 전 아이들을 인솔해서 수학여행을 갔을 때이다. 첫 박을 한 숙박업소에서 내민 깨알 같은 글씨의 영수증 내역을 확인하는데 글씨가 흐릿하게 뭉게져 그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너무 당황하여 손이 떨리기까지 했던 것 같다. 안경을 벗어서 봐야 하나 생각하면서 안경테를 만지는데, 내가 빨리 계산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지 교장선생님이 다가와서 금액이 맞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안경을 벗고 보려던 마음이 재차 들었지만 이내 꾹 참아버리고 금액이 맞다고 얼버무리듯 말하고 계산을 해버렸다. 나는 왜 그 순간 자연스럽게 안경을 벗고 금액을 확인하지 못했던 걸까? 아마 그 순간 내가 나이 든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과 같은 부끄러움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 나를 쳐다볼 때 안경을 벗고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민망하다. 나이 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는 것은 나의 유별남 때문인가?
이제 30여 년을 함께 했던 안경을 집에서는 안 쓸 때가 더 많아졌다. 집안일을 할 때, 휴대폰이나 책을 볼 때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tv 볼 때만 쓰는 편이니 거의 쓰지 않는다고 보아야겠다. 덕분에 건망증 심한 나는 안경이 필요할 때 안경 둔 곳을 찾아 헤매는 소동을 사흘에 한 번은 치루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 밖에 나갈 때는 안경을 쓰는 게 더 마음이 놓인다. 얼마 전 안경을 쓰지 않고 밖을 나가보았는데 주변 사물이 뿌옇게 보이는 것이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고 밤에는 더욱 그러했다.
어쨌든 이제 안경을 쓰지도 벗지도 못한다면 안경을 둘 장소를 정해야 한다. 마땅한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 두면 될 것이지만 마땅히 둘 장소가 없는 순간 안경을 벗어야 한다면 어디에 둘 것인가? 한 손에 들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한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다른 손이 안경을 들고 있는 것은 왠지 손이 어딘가에 매인 듯 부자연스럽다. 그럼 머리 위에 얹어 둘까? 머리 위에 둘 경우 나이 든 사람이란 것을 광고하는 듯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에 안경이 얹혀 있으면 왠지 거추장스럽고 몸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내가 취하는 방법은 옷의 앞섶에 선글라스처럼 걸치는 것이다. 이건 그래도 조금 덜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이 있고, 몸을 움직여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안경의 위치를 정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돋보기를 사거나 다초점 안경을 살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좀 더 편하고 보기에도 좋은 안경의 위치를 찾아볼 생각이다. 혹시 둘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 안경을 잠깐 벗으시는 분 계시면, 안경은 어디에 두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