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나의 어린 날 추억 3가지
남편의 생일날, 나는 아들에게 케이크 상자를 주며 케이크를 꺼내 초를 꽂고 불을 켜라고 하고는 접시와 포크를 준비해 거실로 갔다. 그런데 아직 초만 꽂힌 채 케이크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남편은 고등학생이나 된 것이 성냥도 켤 줄 모른다고 타박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어설프게 성냥을 잡고는 빨간 마찰면을 툭툭 치고 있었다.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성냥이란 것은 돌도끼만큼이나 낯선 도구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구석기시대나 다를 게 없는, 성냥 시대인 40년 전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1. 시장과 골목은 나의 놀이터
40년 전, 내 또래의 대부분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시절 유치원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때 나의 어머니는 벌이가 변변치 않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뭐라도 해서 어린 두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소금 장사였다. 말이 좋아 소금 장사이지, 매일 아침 소금 도매상에 가서 소금을 한 다라이 떼와서 동네의 작은 시장 입구에 앉아서 되로 소금을 조금씩 파는 일로, 한 다라이를 다 팔아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정도의 벌이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때 홀로 집에 둘 수 없었던 어린 남매인 나와 동생은 엄마를 따라 시장에 와서 소금이 큰 되, 작은 되에 재어져 팔리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거나 시장에서 파는 주전부리를 사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그때 나는 다라이 가득하던 소금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집에 갈 시간을 어림했고, 얼른 다 팔려 집에 빨리 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늦게 소금이 다 팔린 날은 주로 길이 어둑해질 때였는데, 그럴 때면 잠든 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의 그림자와 술래잡기를 하거나 높이 뜬 달과 달리기 시합을 하며 가다 보면 멀고 먼 집에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어떤 날은 엄마가 쥐어준 오백 원으로 동생과 각각 사과 한 알과 '왔다 초코바' 한 개, '만화 껌' 한 통씩을 사서 집에서 하루 종일 아껴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생각보다 늦게 오면 어둠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와 집 근처 전파상 유리창 너머로 텔레비전을 보며 엄마가 오는 큰길 쪽을 수시로 쳐다보곤 했다.
2. 수시로 정전이 일어나던 시절
그 시절에는 전력 수급이 항상 불안정해서 수시로 정전이 발생했다. 어느날 갑자기 텔레비전과 전등이 동시에 꺼지면서 온 세상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두운 사방에서 초를 찾는 소리가 앞집, 옆집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집집마다 하나, 둘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가 일러준 장소에서 초를 더듬더듬 찾아서 (미리 초의 장소를 기억해 두는 일은 그때 중요했다) 성냥으로 촛불을 켰다. 그러고는, 방금까지 나왔던 텔레비전 프로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달래며 촛불에 비쳐 환해진 하얀 벽에 손을 가까이 대고 동생과 손그림자로 멍멍 짖는 개, 훨훨 날갯짓하는 새 모양을 만들며 놀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번쩍 전깃불이 들어왔으나 이미 텔레비전의 중요한 장면은 정전이 삼켜버린 뒤였고 따분한 광고만이 우리를 환하게 반겼다.
3. 얻어 입은 옷들, 그리고 나의 노란 원피스
그 시절 엄마는 어디선가 내가 입을 만한 옷을 항상 얻어 왔다. 아마 주변에 여자 아이가 있는 좀 사는 집에서 우리 집 형편을 알기도 하고, 또 옷도 멀쩡하니 아까워서 좋은 마음으로 그렇게 엄마에게 주기적으로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그 옷들은 내가 보기에 대부분 예쁘고 새 것처럼 좋아 보이고, 제법 비싸 보이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초가을 어느 날, 엄마는 또 몇 벌의 옷을 얻어왔다. 그 부잣집에서 가을, 겨울 옷을 정리하고 보내준 것인지 다 제법 두꺼운 옷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쁜 옷을 빨리 입고 싶어서, 그중에 제일 예뻐 보이는 꽃무늬 하얀 스웨터를 입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하늘거리는 하얀 레이스가 목 위까지 올라오고, 몸판에는 꽃무늬 같은 것이 수놓아져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동생과 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옆집에 사는 어떤 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가 내 동생에게 뭐라고 말하고는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갔다. 동생은 내게 와서 해맑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 저 누나가 누나보고 누나는 벌써 겨울이래. 겨울 옷을 입고 다닌다고."
어린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아이가 집으로 들어갈 때 나를 슬쩍 보며 입가에 흘린 웃음이 비웃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그 후로 그 예쁜 옷들을 나는 잘 입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엄마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시장에 데려가 옷가게 제일 위 편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던 개나리 같은 샛노란 원피스를 사주었다. 기억하는 한, 내가 골라서 엄마가 사준 첫 번째 옷이었다. 나는 그 노란 원피스를 계속 안 입고 있다가 얼마 뒤 봄 소풍날 뜬금없이 입고 갔다. 담임선생님은 소풍날 노란 원피스를 입고 온 나에게 웃으며 뭐라고 말하였던 것 같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노란 원피스는 나의 보물 1호가 되었고, 지금은 바랜 사진 속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21세기 아들은 나의 20세기 이야기가 이상하기만 할 테지만 바래진 추억 속 책장들은 한번씩 나를 꿈꾸듯 그 시절로 데려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