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터져 나온 작지만 경탄의 목소리들.
모두의 눈이 창으로 향했다.
솜털 같은 작은 눈송이들이 날리고 있었다.
부산 사람들에게 눈이란 선물 같은 것이다.
눈이 내리면 휴대폰이 연신 울린다. 잠깐 스치고 가버릴지 모를 이 소중한 축복의 광경을 혹시 친한 이들이 놓칠까 봐.
" 지금 여기 눈 와. 거기도 와?"
"지금 창 밖을 봐" 등등
감탄도 잠시, 45도에 가까운 오르막의 꼭대기에 위치한 나의 일터 앞 도로가 곧 빙판이 될 것이라는 예감에 몸서리를 친다.
아이들의 눈은 창문에 꽂혀 떨어지지 않는데 아이들은 정작 나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 (내가 그렇게 재미없고 무서운 교사인가를 잠시 반성한다.)
어차피 수업은 안되고 애들 마음은 콩밭 눈밭에 가 있으니 내가 먼저 항복한다.
"10분만 집중하고 나가자"
아이들은 환호하고 겨우 눈을 창문에서 떼 놓고 수업을 마무리하고 함께 나갔다. 예전 같으면 함께 뛰어놀았을 터인데 이제 추워서 유리문 넘어 아이들 모습을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오후 퇴근 시간, 역시나 주차장은 난리가 났다. 안 그래도 열악한 주차장을 자랑하는데 눈까지 내렸으니 이미 주인이 버려두고 간 차가 주차장에 가득하고 몇몇 운전자는 빙판에 겉도는 바퀴를 겨우 겨우 진정시키고 출발한다. 나는 겁에 질린 차들의 비틀거림을 지켜보며 고민하다 결국 차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러 미끄러운 운동장을 엉금엉금 걸어 큰길까지 나가보았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간혹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애처롭게 손을 흔들어 봤지만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다. 결국 나는 다시 주차장으로 어기적거리며 돌아왔다. 주차장을 나가는 입구의 경사로를 오르지 못해 내 차는 한참을 윙윙거렸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차를 돌리려는데 이젠 이도 쉽지 않았다. 결국 차를 운전해 주차장을 나가는 방법밖에 없음을 깨닫고 나는 부들부들 떨며 다시 엑셀을 계속 밟으며 제발 올라가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1시간 여만에 나는 주차장을 탈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눈은 축복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 눈은 때로 위기였고 두려움이었다. 내가 사는 순간마다 내가 모르는 축복과 위기가 지나간다. 그것을 모르고 지나가는 내가 또 있다. 뻔한 이야기지만 순간순간에 감사한다. 갑작스러운 위기가 나를 겨누지 않고 어긋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 순간의 축복에 감사한다.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안타까웠을 순간이 뜨겁고 아프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눈발에 마음이 정화되었던 순간과 겨우 15도의 주차장 입구 오르막을 오르지 못해 두려웠던 순간이 어쩌면 같은 것인지 모른다. 우주의 찰나와 같은 인간의 삶과 삶 속의 찰나와 같은 한 순간이 어쩌면 같은 시간과 무게인지 모른다. 우리를 덮을 듯 내렸던 반가운 눈은 하룻밤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찰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