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희열, 성장의 희열 그리고 깨달음의 희열

by 연구하는 실천가

제법 묵직한 책을 집었다.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음. 읽는데 반년은 걸리겠군. 이번 연체는 제법 길어지겠는데?'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고 서둘러 회의에 참석했다. 올 1년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회의는 예상대로 길어졌다. 지루함과 답답함 속에 내 앞에 뜬금없이 놓여있는 두꺼운 책에 사람들의 눈길이 머문다.

"그 책 재미있어요?"

"방금 빌렸어요. 베개 대용입니다. "


오랜만에 1시간 가까이 책을 읽었다. 책 중간중간 궁금한 사건이나 인물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서.

내가 몰랐던, 그리고 알았더라도 깊이 몰랐던 것에 대한 문이 조금씩 열리면서 지적 희열이 일렁인다. 이게 배움의 맛이 아닐까? 수동적인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예전 나의 학창 시절, 그리고 우리나라 학생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공부가 아니었다. 그저 암기였고, 우격다짐이었다.

언제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지적 희열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을까?


이는 굳이 공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탁구를 배운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정확히 말하면 5년 전에 한 달 정도 배우다 그만둔 적이 있으므로 총 세 달이라 하겠다. 5년 전에 처음 탁구를 배울 때 탁구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아들에게 탁구를 가르치게 하려고 함께 등록한 것이었고, 아이보다 운동신경이 둔한 나는 항상 자세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았고 자세에 신경을 쓰다 보니 팔도 아프고 공도 안 맞고 재미도 없었다. 그렇게 자세를 바로 잡는 데에만 한 달을 쓰고 재미없게 끝나고 말았다. 다시 5년 만에 탁구를 배운다. 또 자세가 안 좋아서 진도도 안 나가고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역시 일주일쯤 지나자 회의가 들었다. 강사가 말하는 대로 자세를 고쳐 잡는대도 자꾸 채가 흔들린다고 지적을 받는다.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잠시 생각했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나를 위해서였지.'

집에 와서 거울을 보고 자세도 잡아보고, 강사의 말을 생각하며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어느 정도 느낌이 왔다. 점차 자세가 안정된 느낌이 들고 강사도 자세가 좋다고 말하기 시작하고, 공도 안정적으로 쳐졌다. 조급함을 버리고 자세잡기에 집중한 결과다. 살짝 재미를 느꼈다. 요즘, 백핸드를 배우고 있다. 또 자세가 안 나온다고 지적을 받는다. 이제 그 말이 거슬리지 않는다. 운전을 하다 신호에 걸리면 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백핸드 연습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안 좋아 운동을 좋아하지만 항상 배우다가 그만두었다.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처음 자세 잡기와 같은 기본기 배우기가 지겹고 답답해도, 그리고 남들보다 느려도 기본이 잡히면 자세가 안정되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또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한 번 그 고비를 넘어보았기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생긴다. 회피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짬짬이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이 순간 성장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떤 경험으로 기억되느냐이다.

나는 처음 탁구를 배울 때, 그리고 다른 운동을 배울 때 기본자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들처럼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고, 남들보다 못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기본자세를 정확히 연습하기보다 어떻게든 기본 단계를 넘어가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실력이 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계속 물어보고 연습해 보고 결국 스스로 내 자세의 문제를 찾아내고 교정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고 실력도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백핸드에서 자세가 나오지 않아 지적을 받지만 두렵지 않다. 첫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연습 때까지 내 문제를 조금씩 생각해 보면 다음 레슨 때 변화된 나를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항상 기본기보다 욕심이 앞서는 나의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여기서 깨달음의 희열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한 것임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 중이다. 어리석게도 지천명의 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