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는 어느 날
나의 감정이 바닥일 때는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말라버린 우물 같은 축축한 어둠 속으로 꺼진 듯 감정이 깊게 가라앉고 피폐해져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럴 때 저 우물 아래 침잠해 있는 감정의 바닥을 긁어모아 퍼올리면 뭔가 비장미 가득한 걸작이 나오지 않을까 잠깐 꿈꾸어 보지만, 우울과 비관과 자괴감, 그리고 혼돈이 가득 엉켜 버린 감정의 덩어리만 떠올라 졸작을 만들기도 어렵다. 언젠가는 이런 감정조차도 딱 떨어진 언어로 담을 수 있을까? 바닥난 감정은 애당초 글을 쓰기에는 맞지 않는 팍팍한 돌밭과 다름없는 것일까? 기름진 토양에서 피어나는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모래 바람 날리는 사막에서 피는 꽃이 더욱 처연한 아름다움이듯 마른 감정의 언어도 그처럼 빛날 수는 없는 걸까?
비루한 감정의 바닥을 들키고 싶지 않아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면서 구차하게 떠오르는 감정의 싹을 말려버린다. 감정이 바닥나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인지, 글을 쓸 정도의 감정의 우물이 내게 없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문득 책을 읽는다. 책 속 어떤 명징한 언어적 표현에 부러움이 솟구친다. 심지어 작가가 공대 출신의 과학자이다. 분석적인 두뇌를 가진 이가 어떻게 이처럼 감성의 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쾌한 표현을 떠올렸을까? 마치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눈으로 저자의 내력을 한참 내려다본다.
나는 다시 감정의 우물 아래로 계속 침잠한다. 바닥의 검은 덩어리를 머리 끝까지 덮어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