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딸과 불행한 엄마 그 사이

by 연구하는 실천가

직원 연수가 있었다. 30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강사는 우리에게 최근 자신의 행복 지수를 0점부터 100점까지 중에서 정하고 주변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자신의 점수쯤이라 여겨지는 곳에 서보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한 99점쯤 된다고 생각했다. 요 며칠 BTS(방탄소년단) 페스타(데뷔 기념일 행사)로 인해 쏟아지는 영상과 음악으로 행복을 경신하는 중이라 100점을 주고 싶지만, 며칠 전 가만히 있는 담벼락을 내 차로 주욱 긁으면서 차 옆면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1점을 뺐다. 남편은 나중에 내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뭐, 차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겨우 1점을 뺐다고?)


나는 둥글게 선 원에서 가장 높은 점수 쪽 사람 바로 옆에 섰다. 제일 끝쪽에 서 있는 그 사람이 100점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 옆에 선 것이다. 나중에 점수를 공개할 때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장 끝쪽에 서 있던 사람은 자신의 행복지수를 97점이라고 말했고, 그 외 높은 점수대 사람들도 90점 초반대였고, 대부분은 80점대부터 60점대였기 때문이다. 라서 내가 이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 돼버렸다. 그러면 나는 그들보다 정말 그만큼 행복한가?


사실 내가 불행할 이유는 한 서른 개쯤 된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싫은 것들부터 소소한 것까지.

특히 요즘은 엄마의 치매 증상이 계속 나빠지고 있고 내 업무인 진로주간이 있는 7월을 앞두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 그야말로 집과 교실은 엉망이 되고 있다. 진로 행사는 학교 전체 행사를 기획하는 거라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반면에 행복할 이유는 5개쯤 된다. 엄청난 업무량이 나를 짓누르지만 나를 지지해 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내신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두고 고3 아들은 힘들어하는 게 역력한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게 고마울 뿐이다. 우리 집에서 예민함과 까칠함을 담당하고 있는 남편은 집안일은 눈곱만큼 도와주고 가끔 재테크라는 이유로 돈을 소소히 날리지만 내가 차로 담벼락을 박고 100만 원 가까이 날려먹어도 마음고생했다며 위로해주는 의외의 야량을 보인다. 가끔 우리 반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서 나 자신과 내 일이 한없이 보잘것없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결국 아이들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아이들이 있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불행에 담담한 편이다. 안 불행한 척해야만 견딜 수 있었던 지난날의 여러 불행들로 인한 방어기제이다. 불행을 인정해 버리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초라함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늘도 많이 불행해 보인다. 가족들과 외식을 나왔지만 엄마의 낯빛이 많이 어둡다. 나는 괜히 어깨를 주무르고 허리를 감싸며 스킨십을 해 보지만 엄마는 애써 담담한 척 몇 숟갈 밥을 뜨고는 수저를 놔 버린다. 그리고 어두운 낯빛 그대로 집으로 오더니 내가 소파에 앉기가 무섭게 에서 서러움을 토해낸다.


니 시누이들은 내가 아들 놔두고 딸 집에 있는 거를 그렇게 흉본다는데 내가 이 집에 있어서 우짜면 좋노. (시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엄마를 걱정하고 엄마를 모시고 시댁 모임에 오라고 한다.)

니가 그때 보냈던 양로원으로 내가 다시 가야겠다. ( 낮에 가는 노인돌봄센터를 잠깐 다녔는데 어느 날 이곳이 양로원이고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서 다니기를 그만두었다.)

아들은 지 엄마에게 연락도 안 하고 딸도 내가 싫다 하니 이 집에서 나가서 혼자 살란다.


엄마의 넋두리처럼 엄마의 불행은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본인이 딸 집에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불안감. 그로 인해 사돈들이 자신을 업신여길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자신을 살갑게 챙기지 않는 아들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 딸에게 억지를 쓰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자괘감, 고생해서 키운 딸이 자신에게 무덤덤한 것에 대한 섭섭함이 수시로 교차하며 주로 이 세 가지 말로 모든 서러움을 토해낸다.


" 엄마,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의 이런 넋두리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나는 앵무새처럼 감정 없는 대사를 남발한다. 나의 앵무새 같은 연기에 엄마는 믿음이 안 가는지 보따리를 쌓다가 풀었다가를 반복며 딸의 사랑을 재차 검증한다. 내가 별 반응 없자 제 풀에 지친 엄마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눈은 텔레비전에 있고 엄마의 그런 행위를 영혼 없는 리액션과 입에 발린 소리를 연발하며 모른 척하던 나는 그제야 혼자 남은 거실에서 현실을 깨닫는다.


요즘 따라 밥을 잘 먹지 않고 행동이 더욱 이상해지는 엄마가 이러다 내 곁을 떠나려고 정을 떼는 행동을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문득 들면서 눈 앞이 아찔해진다. 서둘러 엄마 방으로 들어가니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다 실눈을 뜬다.

" 엄마 잘 자. 내일 우리 바람 쐬러 가자."

내가 안아주며 뺨에 뽀뽀를 해주니 엄마는 그제야 표정이 편안해지며 곤히 잠이 든다.

불행은 항상 그림자처럼 내 뒤를 쫓았다. 예전부터 있어 왔던 불행들은 나의 무념무상과 공상의 버릇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소소한 행복들이 불행들 위로 티끌처럼 쌓여왔다. 불행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지만 행복은 과거보다 조금씩 충전되 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행복의 티끌들이 내게는 그저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들과 비교하면 불행의 크기가 어쩌면 행복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불행에 큰 변화가 없다 해도, 나의 행복이 조금씩 충전되고 있음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온다.


물론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난 정말 행복한 걸까? 행복한 척하는 걸까? 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걸까? 공상 속 허깨비로 살고 있는 것일까? 정말 엄마를 사랑하는 것일까? 엄마가 안 계시면 겪을 죄책감과 그리움 때문에 미리 이렇게 나를 포장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또 한 번 불행에 무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