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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24. 2018

유난스러운 위내시경 체험기(feat. 태풍)

인간은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항상 가지고 있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회나 개인이나.

아마도 욕망을 드러낼수록 유한함이라는 생명의 운명을 맞닥뜨려야 하고, 그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인간의 무의미함을 씁쓸히 씹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에는 신비한 약초나 무속신앙이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은밀히 대신했다면 지금은 건강검진이 그 한 방법일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건강검진을 안 한다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그렇게 차이가 날까? 태풍이 곧 상륙한다는 뉴스를 들으며 오늘 아침, 나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싶은 마음에 이런 헛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검진 예약을 한 날짜가 어떤 순간에는 빨리 오기를, 또 어떤 때에는 천천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축 처지는 내 마음처럼 시간의 흐름은 느리게 흘러갔지만 결국 오늘은 오고야 말았고, 태풍도 함께 왔다.


 4년 전 수면 내시경을 하며 무호흡이 왔고, 검진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2년 전 반수면 내시경을 하며 기침을 하는 바람에 검진은 또 중단되었다. 그래도 나는 수면 내시경이 아닌 경우를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수면 내시경 예약을 했다.

 

 병원에 도착했고, 수면 내시경비를 수납했다. 혈액 검사를 하고 수면 내시경을 위해 주삿바늘을 팔에 꽂은 채로 내시경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 그냥 내시경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에요. 일단 한번 해 보시죠."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좁은 침상에 누웠다.

  '그래, 일단. 뭐. 시험 삼아. '


  순간 내 눈 앞에 신비로운 붉은 빛을 내며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뱀이 한 마리 나타났다. 그 녀석은 어느 순간 나를 칭칭 감았다.

 ' 잠깐만요!'

 나는 분명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녀석은 내 머리부터 꾸역꾸역 삼키더니 내 목, 내 가슴까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순간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트럼을 했다.  의사로 느껴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 트럼을 참아 보세요. 금방 끝납니다. "

내 소화기를 장악한 녀석때문에 내 의식과 내 몸은 분리되어 있었다. 나의 의지와 다르게 또 나오는 트럼, 그리고 의사의 한숨 소리.

 그리고, 얼마 후, 속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묵직한 금속 느낌의 물체 덩이리.

내가 본 뱀, 아니 내시경 기구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어하시네요."

의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앳된 얼굴의 대학생 무리.

'아, 난 지금 어떤 모습으로 그들 앞에 널브러져 있었을까. 괜찮아, 다시 안 볼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밖에.


 "검사가 잘 되었나요?"

나는 떨리고 절박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결과는 나왔어요." 라며 웃으며 말하는 의사가 처음으로 예뻐 보였다.


 그렇게 아끼게 된 수면내시경비 85000원으로 나와 남편은 4년 만에 둘만의 외식을 즐겼다. 태풍으로 흐린 하늘이 바다와 맞닿을 듯 짙게 내려온, 해운대 청사포가 내려다 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서로 수고했다며 웃을 수 있었다. 2년 후에는 알약 내시경이 나오길 기도하며.

미래의 알약내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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