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전까지 야구장 앞에 살았지만, 야구장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그 앞 광장에서 자전거 타기, 운전 연습, 데이트는 해 봤지만.) 그렇다고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록 국가대항전 위주로 보기는 하지만,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집중해 보는 편이다. 그런데 야구는 그게 안되었다. 야구는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도 흥미가 안 생겼다. 이처럼 야구의 맛을 전혀 모르는 나를 야구 마니아들이 보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겠지만 말이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남편도 그렇게 야구를 즐기지 않는다. 이처럼 야구에 관심 없는 부모를 둔 탓에 서울까지 가서 맨유 축구 경기를 보고 기말고사를 앞두고 월드컵의 전 경기를 밤새워 보는 축구광인 아들이, 야구만큼은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야구 무식자'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야구장에 갈 기회가 생겼다. 지인들의 가족 모임을 하필 야구장에서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갈까 말까를 잠깐 고민하다가, 아들이 '야구 체험학습'을 해보고 싶다는 말에 '야도 부산에 살면서 아들이 야구를 몰라 기죽으면 안 된다'는 부모로서의 책무감에 야구장 체험학습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전날 벌초를 다녀와 피곤하다며 당일 아침에서야 못 가겠다는 남편 덕분에 우리 모자의 야구 체험기는 더욱 암담해져 버렸다. 첫번째 시련은 야구장에 여유 있게 도착하였으나 야구장 내 주차장은 이미 만차로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고, 주변 골목도 모두 주차장으로 변해버려 내 차 한 대 붙일 곳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옛 친정이던 근처 아파트까지 차를 가져가 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파트는 오래되어 외부차량이 주차해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옛 거주자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날의 유일한 행운이었다. 두번째 시련은 '수많은 야구장 좌석 중 내 자리는 어디인가?'를 속으로 되내이며 내 좌석번호를 찾지 못해 야구장 주변을 30분 넘게 헤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야구를 보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 나의 아들에게 지면을 빌어 사과한다. 이 나이 되도록 야구장도 와 본 적 없는 못난 엄마를 용서하라고.
나는 결혼을 앞두고 성당에서 급히 세례를 받았던 적이 있는데, 순전히 결혼 전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엄마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으려면 그전에 성경과 교회에 대한 학습을 일정 기간 받아야만 하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충 세례를 받고 첫 미사에 참여하였을 때 나는 난감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신부님의 인도에 따라 미사를 보는데 사람들이 똑같이 소리내어 기도문을 암송하고, 미사 순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일어서서 옆사람과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동작을 취하고 다시 자리에 앉고를 반복하였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해 쩔쩔매었던 것이다. 그날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성당에서의 첫 미사와 비슷한 당혹스러움을 그날 야구장에서 또 느꼈는데, 그것은 홈팀의 타자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그 타자를 응원하는 노래와 동작을 연습이나 한 듯이 일사불란하게 하고 응원단장의 앞 구호에 맞추어 뒷 구호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것을 따라 하지 않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의 눈과 손은 둘 곳을 몰랐다. 그저 족발과 치킨을 열심히 먹으며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파도타기 응원이 저쪽에서 시작되면 나는 부담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다가 옆사람을 따라 엉거주춤 일어나기가 무섭게 얼른 앉았다. 그러다가 나처럼 조용히 관람만 하는 사람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유심히 보면 대개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엄마로 아이를 돌보느라 응원을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 일행 중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만의 응원으로는 참을 수 없었는지 나를 계속 같이 일으켜 세웠는데, 나는 일어서서 모두가 팔을 흔들며 노래할 때 그 노래에 맞추어 어색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노래방도 아닌데 말이다.) 그나마 아들은 5회쯤 되자 분위기에 맞추어 또래 아이들과 제법 같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나보다는 사회성이 있는 녀석이었다. 홈런이 터지면 다들 일어서서 소리를 지르고, 심판이 마음에 안 들게 판정을 하면 다 같은 야유를 보내는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 오롯이 나만이 냉정을 잃지 않고 진지함을 유지한 관중이었다. 비록 겉으로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얼핏 호응하는 듯 했지만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정말 야구 경기를 보러 오는걸까? 응원을 즐기러 오는 게 아닐까? 혹은 먹으러 오는 건가? (사실 경기를 집중해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먹었다. )' 이건 경기를 보는 게 아니라 흡사 피크닉을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운동회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 아들에게 물었다.
" 야구 체험학습, 어땠어?"
"괜찮았어. 재미있었어."
'그래, 너의 그 말이면 오늘 나의 체험기도 성공적이야. 네가 야구랑 조금이라도 친해진다면, 이 한 몸 여러 번이라도 야구장에서 어색함을 감당하겠어. '
그날 하루는 길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