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토는 대충 살기이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주변을 챙기며 사는 것을 난 좀 피곤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대충 사는 것도 열심히 사는 것만큼 사실 만만치가 않다. 대충 살면 그만큼 시행착오가 수시로 찾아오고 그만큼 a/s를 하며 살아야 하니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런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열심히 살아볼까 하다가도, 꼼꼼하게 챙겨가며 사는 게 힘들어, 또 대충이 가지는 숨통 틔우기를 포기할 수 없어 대충 살기로 회귀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글도 대충 쓴다. 뭔가 멋진 글이 될 때까지 다듬고 다듬어야 할 거 같은데, 두어 번 수정하고 나면 그냥 브런치에 올리고 만다. 며칠 두고 보면서 좀 더 다듬어야 할 거 같다고 찜찜해하면서도 그 부족함을 채우려는 꼼꼼함보다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조급함이 이긴다. 일명 후다닥 병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던 50살이 갓 되었을 때 나는 세상 한탄은 혼자 다하는 듯 브런치에 쉰 즈음에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이 먹음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벌써 50 중반을 넘기고 60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50의 나이가 큰 파도처럼 느껴졌던 그때를 이제 돌아보니 50은 귀여운 물결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결국 60을 앞둔 자의 마음으로 이렇게 다시 주저리 쓰고 있다. 남은 50대와 60대의 시작을 대충 살지, 말지를 고민한다. 누구는 60살에 무엇을 시작했고 뭘 이루었고 하며 열심히 살 것을 요구하는 영상과 글들이 떠돌지만, 그냥 꼬박꼬박 나올 퇴직연금을 감사히 받으며 살아갈 남은 날을 대충 살고픈 마음도 크다. 뭔가를 시작했다가 실패하거나 그 노력이 무쓸모였을 때 소모될 나의 몸과 마음과 비용이 젊은 날보다는 더 크게 와닿을 것만 같다.
재작년 1년 동안 공인중개사 공부를 꼬박하여 합격증을 받았다. 곧 다가올 은퇴 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작은 사무실 정도 구할 비용이면 그래서 하루 몇 시간이라도 앉아 있으면 되는 일이라고 대충 생각하고 1년을 공부한 것이다. 그래서 우격다짐으로 겨우 외워서 합격을 했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이 일을 너무 쉽게 보고 들어온 것 같아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결국 급히 공부하여 증발된 지식의 자리를 의문으로 가득 채운 채 받은 합격증은 나의 삶에 보탬이 될지, 장롱에 오롯이 보관하게 될지 모를 일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올해 또 하나의 작은 도전을 시작한다. 할까 말까 고민하며 일단 신청해 보았던 특별연구년이 덜컥 선정이 되었다. 30년 넘게 대충과 열심을 반복하며 게으르지만 성실한 시계추처럼 다녔던 학교를 1년간 쉰다. 3월이 되면 항상 시작되었던 나의 똑같았던 치열한 새 학년이 올해는 오롯이 나 홀로 나의 계획과 함께 외롭게 싸워나가야 한다. 공인중개사의 꿈인 덜컥 덤벼들어 후다닥 노력해서 덩그러니 따버린 자격증처럼 1년 동안 나의 시간들은 대충과 열심 사이에서 ‘이 길이 맞냐 ‘고 외치며 번민의 시간을 가지게 될까.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얻고 싶었던 여러 목표는 또 얼마나 다가서질지 막막한 그 벽 앞에서 나는 또 망설이다 말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원치 않는 나이를 다시 한 살 꿀꺽 먹게 되었다.
나이를 잊기 위해 사람들은 피부과에서 시술을 하고, 몸을 단련시키며 노력한다. 그런데 나이를 잊으려 하면 더 나이를 잊기가 어려워진다. 차라리 목표를 가진다는 것은 나이를 잊을 수 있는 일이다. 아무런 시술도 하지 않고, 푸석한 맨 얼굴로 다니는 나에게 짓궂은 1학년 녀석이 나에게 할머니냐고 물어본다. 나는 '응 그래.'라고 이야기한다. 굳이 아직은 아니라는 말로 나의 나이를 그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보이면 그렇겠지 하면 된다. 아줌마와 할머니 호칭이 왜 무례한 호칭이 되었을까? 우리가 나이를 잊고 싶어 해서일까? 나의 이러한 대처도 열심히 부지런히 나이를 잊으려는 노력을 피하려는 대충의 방안일 지 모른다.
어느 책에서 읽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만큼이나 아릿한 것이 한 시절과의 이별‘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교실을 요즘 정리하고 있다. 나의 과거와 함께 해 온 온갖 서류 뭉치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오프라인의 시대를 거쳐 온라인의 시대가 된 지 오래이건만,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모아 온 자료들을 아직도 짊어지고 있었다. 미술 감상시간에 꼭 써야지 하고 모아놓은 ‘달력 속 명화 그림 뭉치들‘,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 좋을 거라고 끼워놓은 학습지 파일들, 연수 때 받은 다양한 자료들과 책들. 결국 한 번을 제대로 써보지 못한 나의 꿈들을 폐지함에 넣으며 나의 마음은 아릿해진다. 결국 몇 개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상자 속에 다시 담긴다. 이제는 화려한 시청각 자료들이 각종 인터넷 매체에 가득 쌓여 있음에도 이 낡은 유물 같은 자료들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뭘까? 이 또한 혹시 모르니까라는 대충의 마음이겠지.
대충의 삶도 치열하다. 뭘 할지 몰라 이것저것 건드리느라 시행착오 가득한 나의 교직생활 30년은 그렇게 몇 개의 쓰레기봉투와 작은 상자 두어개에 담긴 채 교실 구석에 놓였지만. 그것들은 나와 함께 옮겨 다니면서 울고 웃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빛나는 아스팔트를 만들기가 고돼서 대충 울퉁불퉁한 흙길인 채로 달려오느라 무릎이 많이 까졌지만 그래도 치열한 시간이었다. 수고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