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오래된 집으로 이사 오다

by 연구하는 실천가

이사를 왔다. 항상 조금씩 집의 크기를 넓혀 이사 가다가, 이번에는 예전에 살던 집보다 평수를 줄여서 왔다. 그래서 그전에 살던 집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온갖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왔다. 못 버리는 병을 가진 나에게 뭘 버린다는 것은 참 힘들지만 버리지 않고서는 이사할 수가 없을 정도로 짐은 많았고 집은 작았다. 그리고 새롭게 안 사실이지만 버린다는 것은 힘들지만, 앓는 이를 뽑 듯 마음이 시원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이 버렸어야 했다는 것을 이사 오고 나서야 깨달았고 어쩔 수 없이 또 일부를 힘들지만 시원한 마음으로 버리고, 일부는 고민하다 결국 못 버리고 어딘가에 꾸역꾸역 수납하였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집의 공간은 줄어들었음에도 예전의 공간보다 더 뭔가 공간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이유는 나만의 정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했다. 햇살이 비추는 마당 한편에 텃밭을 가꾸고, 마당 한가운데 넓은 평상을 두고 앉아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기에, 언젠가 내 노후의 안착지는 전원주택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꿈을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집으로 이사 와서 나는 작은 정원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멋진 야외 정원이 아니라 내 마음의 안식처였다. 예전 집에서 퇴물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오래되고 커다란 1인 안락의자를 이번에는 기필코 버리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는데 결국 꾸역꾸역 끌고 왔다. 다리를 올리는 보조 테이블도 고장 나서 버린 지 오래고, 소파 가죽은 늘어질 때로 늘어져 광택을 잃어서 밖에 내놔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볼품없는 소파를 나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들고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소파가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품목 중 하나가 되었다. 주방과 안방 사이의 애매한 코너 공간에 작은 책장과 미니 책상, 화분 몇 개와 함께 자리한 이 소파는 영락없는 나의 독서 공간이 되어 준 것이다. 그전에 살던 집에서도 큰 책장과 반듯한 책상이 있는 독서 공간이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책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운동과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이 집 부엌에 빌트인 되어 있는 라디오를 켜 클래식 채널을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바로 이 소파에 앉아 부드러운 우유를 넣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그러면 마치 작은 새들이 조잘되는 나무 아래 평상에 앉은 것 마냥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바로 나의 첫 번째 마음 정원이다.

또 다른 나의 정원이 있다. 그곳은 밝은 햇살이 쉼 없이 들어오는 거실창 앞이다. 예전 집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화초들을 남향 거실 창 앞에 모아두고 그 아래에 나의 요가 매트를 깔았다. 그 요가 매트 아래에서 화초를 바라보며 아침마다 스트레칭을 하는 이 공간이 또 다른 나의 두 번째 정원이다. 스트레칭을 하다 화초를 멍하니 바라 보거나 삐죽 나온 잎을 골라주는 시간은 내가 바라던 텃밭 가꾸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며칠 전 넓은 평수의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남동생네 집들이를 다녀왔다. 입구부터 휘황찬란한 첨단 시스템의 커다란 모니터와 반짝거리는 금빛 엘리베이터와 로비 대리석, 그리고 넓고 깨끗한 거실 가운데 놓인 큰 소파와 다양한 소품들, 거실만큼 넓은 주방의 각종 빌트인 제품들과 커다란 식탁 등은 나에게 약간의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나의 작고 오래된 이 집에 대한 애착이 그 부러움을 상쇄시켜 주었다. 그 이유는 너무나 작고 아기자기한 주방의 구석구석을 나만의 방법으로 요리조리 수납공간을 만들어 각종 그릇과 양념통 등 주방 도구를 보관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기쁨, 그리고 많은 물건과 옷들을 정리 보관하기 위해 옷장과 화장대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인테리어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고심하여 나만의 아이디어로 물건들을 잘 보관했을 때의 뿌듯함.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보수재로 때우며 거의 표시 나지 않게 고친 만족감. 화려한 대리석보다는 갈색 원목 위주의 벽면 인테리어로 고풍스럽지만 촌스럽지 않은 이 집의 멋스러움 등. 이처럼 내가 만들어 가는 내 공간 만들기의 기쁨은 물건들을 툭툭 던져놓기만 해도 완성되어서 주인의 애착과 고민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커다란 평수의 새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감정들이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내 집을 쓸고 닦으며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집을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 고심하며 나의 집은 내일도 뭔가 달라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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