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자식이 하나인 게 뭐 별거냐마는, 외동을 둔 부모의 걱정이 남다른 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한다. 부지런하지도 않고 어찌 되겠지 하는 성격이라 사교육이나 뭘 챙겨주는 건 평범한 워킹 맘보다 못한 나도 마음만은 세상 유별난 엄마로 안절부절못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래도 좋게 말하면 쿨하고, 나쁘게 말하면 냉정한 아빠를 둔 덕에 아들은 유약했던 어릴 때 모습에서 점차 벗어나 정상 범위 안에 드는 활달한 10대로 자라주었다. 그 아들이 오늘 처음으로 친구랑 달랑 둘이서 서울여행을 갔다. 그 먼 서울까지 부모나 교사 같은 보호자 없이 말이다. 더구나 내려올 때는 혼자 와야 한단다. 다 큰 아들의 하루짜리 여행이 뭔 대수라고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유별난 엄마는 싱숭생숭한 마음에 1시간마다 문자를 보내고 있다.
여행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부라고 했던가? 여기서의 여행은 부모의 보호 아래 가는 여행이 아닌 오롯이 스스로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속에 던져지는 여행일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당일 여행이나마 스스로 크고 작은 문제 상황을 감당하며 가질 경험은 아이를 한 뼘 자라게 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어제 경비실에서 등기가 왔다고 해서, 남편이 나가더니 하얀 편지 봉투 하나를 들고 오면서 실실 웃으며 말한다. " 이 녀석 이제 어른 된다."
나는 남편의 표정과 그 말에서 뭔가 느낌이 왔다.
" 혹시 주민등록증 나오는 거야?"
남편의 긍정의 눈빛에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항상 아기처럼, 또 딸같이, 막둥인 듯 달라붙으며 장난치던 아이가 이제 조금 낯설게 느껴지려 한다.
밤에 아이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무슨 큰 뉴스 인양 아이에게 이야기했고 아이도 당황한 기색으로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며 어리둥절해했다.
" 글쎄, 이제 사고 치면 네가 알아서 해결하고 책임져야지?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미성년이라서 술 담배나 미성년 금지업소 안되고, 선거권 같은 건 없어. 그러니까 권리는 없고 의무만 성인인 거지?"
그러자, 아이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 기념으로 면도기 사 줄까?"
면도기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들에게 아직 멀었다던 나는 아들의 방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며 입가에는 뭔가 모를 미소와 씁쓸함이 함께 배어나왔다.
이제 아이는 성인을 앞두고 있다. 적어도 신체적으로나, 법적으로는. 하지만 아이는 아직 혼자 멀리 가본 적도 없고, 스스로 중요한 일을 결정해 본 적도, 혼자 집에서 자본 적도, 면도를 해 본 적도 없다. 아직 처음 해봐야 하는 많은 과제들이 앞에 놓인 초보 예비 성인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보다 더 준비가 안된 예비 성인 자식을 둔 엄마이다. 이제 1년 남짓 지나면 아이는 좀 더 먼 곳으로 공부하러 떠날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다닌다 해도 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도, 해줘야 하는 일도 없어야 하고 없을 듯하다. 그저 가끔 세상의 바람이 너무 거세어 아이가 고개 숙이고 뒷걸음질 칠 때 살며시 어깨를 감싸주며 곁에서 함께 바람을 견뎌주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상과 부딪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다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일을 해야 한다.
문득, 이 녀석이 역에 도착하면 한참 늦은 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역까지 데리러 가고프지만 남편은 분명 알아서 오게 두라고 할 것이다. 가능하면 혼자 스스로 집까지 찾아오게 하는 것이 아마 나의 첫 숙제일 듯하다.
어릴 때 아이가 엄마 젖을 떼 듯, 나도 아이에게 기대었던 심리적인 의존성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느낀다. 나도 이제 쿨해져야 한다. 나의 실존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