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으로 게으른 워킹맘의 휴일

by 연구하는 실천가

일요일 오후 다리 한 짝을 소파 위에 올리고 소파에 붙은 껌마냥 납작하게 밀착한 채 휴대폰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아들에게 말했다.

" 00야, 엄마 완전 나무늘보 아니냐?"

두 남자는 나의 자세를 보고 낄낄 대었다.

우리집 나무늘보의 서식지

" 나무늘보에게 밥 얻어먹는 너희는 어떤 생명체냐? "

나의 냉랭한 한 마디에, 쥐꼬리만큼 집안일을 돕는 두 남자는 그래도 염치가 있는지, 각자의 방으로 얼른 도망간다.

"이 하이에나들아!"

나의 외침이 조용한 휴일 아파트 단지를 흔들었다.

그래도 좀 귀여운 나무늘보 사진을 골라 보았다. 오른쪽은 남편, 아니 하이에나


누군가 나의 주말 모습을 본다면 소파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시간이 상당히 많은 것에 아주 편하다 할 것이다. 어쩌면 게을러보일지도 모른다. 나무늘보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무늘보도 나도 억울하다. 우리는 아주 효율적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한 순간도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나의 주말은 아주 계획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아침 9시에 기상해서(나의 유일한 사치인 주말 늦잠자기는 눈 감아 주시길.) 주스를 갈고 아침밥을 준비하는 데 1시간. 10시에 하이에나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뒷정리와 설거지(아주 가끔 남편 찬스를 쓴다)를 하면 11시. 소파에 앉아 남편이 타 주는 커피를 마시고 tv를 12시까지 본다.(이게 유일한 휴식시간일 듯) 12시쯤 빨래를 돌리고 그동안 베란다 빨래를 걷어서 개면서(남편도 가끔 돕는다.) tv를 보는데 1시간. 옷을 제자리에 넣고 세탁기 빨래가 다 돌아가면 빨래를 널고 로봇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가 도는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리고 다시 1시간 정도 나무늘보 자세로 소파에 누워 점심 메뉴를 생각하며 휴대폰을 본다. 그리고 1시간의 고뇌 끝에 주로 점심은 외식으로 결단을 내리고 하이에나들을 앞세워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 다시 돌아와 나무늘보 자세로 누워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오후 할 일을 고민한다. 고민 결과 주로 부엌 정리와 행주 삶기 등 가장 시급한 업무를 실시한다. 다시 소파에 밀착하여 tv 채널을 돌리며 이번 주 내가 보는 프로 중에 못 본 것이 있는지 점검하며 저녁 메뉴를 생각한다. 땅거미가 내릴 때쯤 산책을 가기 위해 일어선다. 산책을 하며 내일 아침 메뉴를 고민한다. 1시간 산책의 고민 결과 정해진 재료의 메뉴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린다. 이하 생략.

이처럼 얼핏 보기에 나는 게으르게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이나 너무나 계획적으로 타이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듯 쉬고, 쉬는 듯 일하는 것은 내가 좀 덜 지치고 평일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생활을 한다.


사실 난 좀 게으른 편인 것 같다. 힘들고 귀찮아 뭘 길게 못 하겠다. 휴일에 이렇게라도 일을 조금씩 쪼개어 하지 않으면 월요일부터 집안 꼴은 엉망이 되고, 그렇다고 휴일을 일로 보내면 나의 일주일은 피곤의 연속으로 번아웃이 된다. 그래서 휴일의 많은 시간 소파에 반쯤 누워 있으면서 머리 속은 다음 할 일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으니 나의 게으름을 너무 탓하지 마시라. 나는 정말 생각보다 계획적인 나무늘보, 아니 아주 계획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사족]

아들은 고2라 휴일도 하루 종일 도서실에서 살고 밥만 먹으러 집에 잠깐 오고, 남편의 가사 분담률이 낮은 건 사실인데 나름 도우려고 노력하니 용서해 주시길. [예전 글 ; 페미니즘의 품위 참고].

매거진의 이전글어른이 되려는 아들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