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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Jun 06. 2021

3. 그리스 아테네(2)

3-2. 파르테논 신전

한인 민박의 조식 시간은 보통 8시~8시 30분이다. 나는 아침 먹고 바로 나갈 수 있도록 그전에 일어나 씻고 외출 준비를 다했다. 정갈하게 차려진 가정식 백반. 따뜻한 국과 여러 반찬들이 참 정겹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은 언제나 그랬다. 오늘 파르테논 신전을 가려면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민박집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배불리 먹었다.


아침을 다 먹은 후 문득 옆을 보니 따뜻한 아침햇살이 들어오는 베란다 창 너머로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그리스 아테네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파르테논 신전을 보기 위해서다. 서양 고대 문화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 문명의 대표적 건축물인 그것. 2000여 년 전에 세워진 건물을 접 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민박집 사장님께서는 숙소 주변의 볼만한 것, 먹을거리, 교통 등 여러 정보를 정성스레 알려주신다. 한인 민박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혹시 중간에 길을 잃거나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나는 휴대폰 데이터를 신청하지 않았기에 종이 지도를 들고 밖을 나섰다. 한국에서 가져간 여행책에서 아테네 부분만 몇 장 찢어서 지도, 먹거리, 볼거리를 참고하며 다녔는데 매우 좋았다. 데이터 로밍비용도 아끼고 휴대폰 소매치기 염려도 줄이고. 그리고 그 도시를 다 여행하면 홀가분하게 그 부분을 버리고 짐을 줄였다.(유럽 전체 정보가 있는 여행책이라 꽤 무거웠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봄이다. 걷기 딱 좋은 날. 어제까지만 해도 몰타에서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아테네에서 벌써 관광 시작이라니...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의 동선은 아침에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곳을 차례로 가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올림픽 스터디움. 올림픽 테네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기에 이곳이 의미가 있었다. 경기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국기가 흔들리고 있는 경기장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니 왠지 그 시대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역사의 현장은 이래서 좋다. 사실에 기반해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 그리고 그 당시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보는 것이 내겐 큰 즐거움이었다.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문

파르테논 신전을 향해 걷다 보니 뭔가 공원 같은 곳에 오래된 것 같은 건축물이 보인다. 바로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문. 가까이 가서 보니 기둥이 어마어마하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져서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파르테논 신전에 다다를수록 관광객이 많았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었는데(아크로는 높은 곳, 폴리스는 도시국가라는 뜻이니 이 언덕 전체가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 밑에서 보니 꽤 높이 올라가야만 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경사가 꽤 있었다. 표를 끊고, 벅찬 가슴으로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디오니소스 극장

오래지 않아 가는 길목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었다. 터키 지방 투어 때 고대 극장을 두 번 봤던 터라 감흥은 덜했지만 돌 의자에 앉아 괜히 한번 기분을 내봤다. 의자의 아랫부분은 약간 홈이 들어가 있는 형태라 다리를 살짝 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터키 가이드님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올라가는 도중에는 군데군데 돌들이 널려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복원 중인 것도 있고 옛 터에 그대로 남아있는 돌들도 있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조금 더 올라가니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있다. 관람석이 현대식으로 이루어져서 알아보니 현재까지도 공연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보는 공연이라...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참 낭만적일 것 같았다.


올라간 지 한 20여분 되었을까. 조금씩 아크로폴리스 언덕 끝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에 파르테논 신전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우와.........!'


교과서에서나 보던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마주하다니. 긴 시간을 거치고 거쳐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듯한 모습. 하지만 그에 걸맞은 웅장함과 당당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 감동 그 자체였다. 백전노장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테네 여행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파르테논 신전 이외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했지만 아테네는 파르테논 신전이 다했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테네의 지형이 한눈에 보인다. 여러 개의 산과 언덕이 곳곳에 있는 도시. 이런 산과 언덕을 중심으로 도시 국가(폴리스)가 형성되었다. 언덕 맨 위는 보통 신전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광장(아고라)이 있다.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곳곳에는 이런 지형을 바탕으로 하는 폴리스가 많았는데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는 더없이 좋았으나 그만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것은 어려웠다. 책에서 봤던 내용을 직접 확인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머리로만 알던 지식이 완성된 느낌이랄까. 



언덕에서 내려오면서 점심으로는 타나시스 케밥을 먹었다. 뭔가 맛있어 보여 시켜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지친 다리도 더 쉬어주고 싶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맛있게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고대 아고라 지역을 돌아보았다. 돌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누군가의 집, 교회, 수로 등 저마다의 옛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아고라는 상업, 정치, 경제의 중심지라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엄청 넓은 지역을 설명도 없이 혼자 한참을 돌아보니 처음보다 감흥이 덜하다. 그게 그 돌 같기도 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들도 꽤나 많았다.(왠지 이럴 것 같아 가이드 투어를 미리 알아봤지만 아테네 워킹투어는 마땅한 회사가 없었다.) 날씨는 덥고, 다리는 아프고 내가 보고 있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일단 쉬어가며 이 일대를 다 돌아보았다. 이곳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만족했다. 저녁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카페에 들러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때우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 아침부터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약 8시간을 걷고 또 걸으니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는 길에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 뭐라도 좀 더 사 먹을까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거트를 샀다. 그릭 요거트는 유명하니 터키에서 맛봤던 그 맛있는 맛이 나지 않을까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오 역시! 매우 맛있다. 한국 요거트와는 다르다. 갑자기 매일 요거트를 종류별로 사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신나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잠깐 다리를 풀어주며 쉬었다. 저녁 7시에 숙소에서 만난 일행 2명과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혼자서는 밤늦게 나갈 엄두를 못 냈는데 (민박집 사장님도 혼자서는 밤에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동행 덕분에 야경을 볼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하고 좋았다.


두 분은 호주에서 직장을 다니다 잠깐 쉬고 계시는 틈에 여행을 오신 거였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라 대화가 잘 통했다.  우리는 즐겁게 수다를 떨며 리키비토스 언덕으로 향했다.(이곳에서 보는 아테네 시내와 파르테논 신전이 멋있다고 한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도 모두 오르막이었는데 언덕에 다다르니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묵묵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일 온몸에 근육통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을 꼭 보고 말리라는 내 안의 집념이 있었다.(나는 어차피 내려올 산인데 왜 올라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만큼 등산을 싫어한다.) 30분 정도 오르니 드디어 끝이 보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아니 대체 야경이 뭐길래 다들 이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내 눈에도 멋진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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