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니 아테네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우리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앞에 있는 광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 멀리 파르테논 신전도 있고, 아득히 먼곳에는 바다도 보인다. 산과 언덕 사이사이로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약간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탁 트인 전경과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그런 생각들을 금방 씻어간다.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진을 찍으며 일몰을 감상했다. 그냥 말없이 해를 보며 서 있으니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서 자연이 주는 그림만큼 멋있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 또한 자연인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내게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아테네 시내에 불빛이 들어오고, 파르테논 신전에도 불이 들어온다. 말없이 한 곳에 앉아서 지는 해와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아테네의 모습도 눈에 담았다
우리는 주변이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냥 가기 아쉬워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멋진 광경을 눈 앞에 두고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몰타에서 20대들과 나눴던 대화와는 또 다르다. 직장, 결혼, 여행 이야기 등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라 깊이가 있다. 내 유럽 여행을 응원한다며 친히 칵테일 값도 내주셨다.(정말감사했어요!)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수다 떨다 각자 내일의 일정을 위해 숙소로 향했다.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곡소리가 절로 난다. 어제 등산을 2번이나 한 데다 많이 걸었더니 근육통이 생겼나 보다. 나름 걷기에는 자신 있었는데 몰타에서 쭉 쉬다 와서 그런지 오래간만의 걷기가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아테네 박물관 투어를 하기로 했다. 실내에서 쉬어가며 좋아하는 것들을 보는 투어. 계획은 완벽했다.(하지만 제대로 쉬질 못하고 계속 걸었다. 박물관마다 볼 게 너무 많아서...)
첫 번째 박물관은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어제 꼭 보고팠는데 시간 관계상 보지 못했던 곳이다.어제 올랐던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 있었는데 아침부터 관광객이 많다.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이곳에 현장체험을 하러 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는데 그중 유치원생도 있었다. 고대 문화의 중심 그리스에서 그리스인으로 이 곳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에렉테이온 신전 기둥
이곳은 조각상들이 많았다.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신전의 조각상과 기둥, 장식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굉장히 볼만했다. 파르테논 신전 옆에 있었던 에렉테이온 신전 기둥이 이곳에 있었는데 인기가 매우 많았다. 가까이서 보니 인체의 균형미와 옷의 섬세함 등 그리스 문화를 배울 때 배웠던 것들이 그대로 들어맞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왔다면 이곳을 필수로 들를 것을 추천한다. 지루하지 않게 관람이 가능하다.
지하철을 타고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전쟁 박물관이었다.(지하철은 우리나라가 최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리스와 관련된 전쟁은 다 전시되어 있었다. 한참을 돌아보니 익숙한 연도가 적힌 전쟁이 보인다. 바로 한국전쟁.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에 대한 내용들이 한편에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옆에는 한국전쟁 당시 UN참전국으로 참여한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들도보기 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윤보선 대통령의 무공 훈장증까지 있다. 한국어를 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참을 관람한 후 비교적 무난했던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음 박물관으로 향했다.
세 번째는고고학 박물관이다.아직까진 체력이 남아있어 오늘 투어 코스를 적당히 무리하지 않게 잘 잡았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이대로라면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아테네 근교도 다녀오는 게 가능할 듯 싶었다. 아... 그런데 고고학 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계획이 무너져감을 직감했다. 박물관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아... 어쩌지?'
급기야는 적당히 보고 돌아가 쉴 것인가, 아님 내일 근교에 가는 걸 포기하고 이곳을 샅샅이 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일단 돌아다녀보자.'
서양 고대의 중심지라 그런지 고고학 박물관은 유물이 차고 넘쳤다. 원래 박물관 탐방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곳을 대충 보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많은 유물들이 나의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게 했다.
넓은 박물관에 볼거리가 많으니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나중에 가 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말도 안 되게 더 넓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 보니 오후 4시가 되었고 슬슬 배가 고파왔다. 점심은 아까 길에서 사 먹은 빵 한 조각이 전부였기에 에라 모르겠다 싶어 박물관 내 카페에 자리를 잡았고, 내일 일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예쁜 정원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먹을거리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으니 다리가 스르르 풀리는 게 참 좋다. 그렇게 잠시 쉬어준다음 나머지 부분도 꼼꼼히 둘러보았다.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곳에선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는데 충분히 알아듣지 못하니 설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박물관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았다. 어린이 박물관처럼 말이다. 재미있게 만들면 역사에 관심 없는 어른들도 좋아할 텐데...(박물관이 정말 재미있다고 느꼈던 곳은 독일 베를린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었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탐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민박집 사장님께선 내일은 메테오라 수도원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셨다.아테네 근교지만 이동시간이 꽤 걸려서 나는 일단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씻고 침대에 누웠다.(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내일 일정은 아침에 상황 봐서 결정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