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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품여자 Jun 11. 2021

3. 그리스 크레타 섬(2)

3-6. 크노소스 궁전

뷔페식 식당에서 먹을 것을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바로 옆과 뒤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언어... 한국 사람들이었다. 아니 크레타 섬은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은데 그것도 많고 많은 호텔에서 이 시간에 두 팀이나 있다니...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괜히 묶었나 싶은 양갈래 머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아니야. 저분들은 내게 관심이 없으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도 쉬이 괜찮아지지 않는 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나의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김태희만큼의 미모를 가지지 못한 속상함 때문이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몰랐던 것 같다. 정말 맛있는 조식이었지만 먹을수록 위가 답답해졌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오늘 일정을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갔다.


맑은 하늘과 바다가 나를 위로해준다. 탁 트인 자연을 보고 있으니 내 안의 특유의 긍정성이 약간의 속상함을 조금씩 덮어준다. 그리고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하게 보내보기로 나를 다독였다.



어제 페리 예약 사무실 아저씨가 가르쳐주신 크노소스 궁전 행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는 20분에 한 대씩 있다. 유명 관광지라 관광객이 꽤 많은 듯했다.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의 종점이 크노소스 궁전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크레타 이곳저곳을 바라보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티켓은 궁전만 보는 것과 궁전+고고학박물관 통합권이 있다. 나는 아테네에서 고고학 박물관을 보고 온 데다 뭐 별거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궁전만 보는 티켓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크노소스 궁전 입구로 들어섰다.



' 앗! 붉은 기둥이다.'


책에서만 봤던 크노소스 궁전의 붉은 기둥이 보이니 왠지 반가웠다. 궁전은 생각보다 크고 넓다. 크레타 섬의 대표적 관광지라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아침의 속상함은 완전히 잊은 채 신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미로 찾기를 하는 것처럼 관람은 재미있었다. 궁전의 각 구획마다 위치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어 둘러보기에도 좋았다. 득히 먼 옛날의 궁전의 모습이라 더 흥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람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곳에서 살았을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돌아보니 더 실감나게 돌아볼 수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에는 다양한 벽화들 있었는데 정말 인상 깊었다. 한참 서서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벽화에 많이 몰려있었다. 나는 그림에는 전혀 문외한인데 벽화에는 유독 관심이 가는 것도 신기하다. 터키에서도 모자이크 벽화에 반해 한참을 보고 또 봤었는데... 화를 보는 데에만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궁전을 다 둘러보고 나니 그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정말 좋았나 보다. 아쉬운 마음에 용기 내어 외국인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해보기도 했다. 나가는 문에 다다르자 관광객이 단체로 엄청 많이 있었다. 나는 침에 일찍 오길 잘했다며 얼른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찍은 사진들을 보며 크노소스 궁전을 다시 재감상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쿵쾅쿵쾅거렸다. 크레타 섬에 온 게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또 한 번 오고 싶을 만큼 좋았다. 이곳이 너무 좋아 혹시 하는 마음에 고고학 박물관도 한번 가보기로 했다. 아침에 크노소스 궁전 가는 길에 박물관을 창밖으로 언뜻 한번 봤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가 않아 버스 기사분께 여쭤봐 해당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다.



크레타 섬의 고고학 박물관. 큰 기대 없이 들어가 보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 중에 최고였다. 개인적으로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보다 훨씬 좋았다. 박물관 동선도 매우 효율적으로 잘 짜여 있어 관람하기에도 편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유물들이 차고 넘쳤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크레타 문명은 정말 멋졌다. 크노소스 궁전과 고고학 박물관은 기회가 닿으면 꼭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박물관을 나왔는데도 감탄사가 내 입에서 쉴 새 없이 나왔다.


'우와~ 여기 이런 곳이었어? 정말 이런 곳이었단 말이야? 크레타 문명 진짜 최곤데?'


마치 보물을 찾은 것 마냥 기뻤다. 오늘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며 그 주위를 계속 서성이다 배가 고파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점심은 바다를 바라보며 제대로 먹어보고 싶었다. 바다 근처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식탁보를 보니 그리스에 온 게 비로소 실감이 난다. 어촌마을이라 왠지 생선이 싱싱하고 맛있을 것 같아 생선요리를 주문했다. 음식을 받고 보니 상상했던 그리스 요리 비주얼이다. 생선살을 한점 먹어봤다.


'와~~ 생선 맛이다. 아하하'


그렇다. 그냥 생선 맛이었다. 그런데 이걸 다 먹으니 정말 맛있는 게 나왔다.



이건 후식으로 준 찹쌀도너츠였는데 한입 베어 문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달콤, 쫀득, 고소, 깊은 맛까지... 도너츠 장인이 만들었나 싶을 만큼 맛있었다. 후식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나니 내 안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 무엇을 해볼까 망설이다가 베네치안 성채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기나긴 방파제 길 초입에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오늘은 휴무였다. 아쉬운 마음에 방파제를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운동하는 사람, 관광하는 사람 몇이 보인다. 귀로는 음악을 듣고, 눈으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걷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꽤 걸어왔는지 베네치안 성채가 작게 보인다. 햇빛도 계속 내리쬐고, 다리도 슬슬 아파와 그만 돌아갈까 했지만 그냥 이 방파제의 끝을 보고 싶었다. 약간 오기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때부턴 나와의 싸움이었는데(왜 싸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반드시 방파제 끝에 가서 쉬겠다는 일념으로 걸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산뜻한 봄날의 산책이었는데 지금은 목표 달성을 위해 달리는 파워 워킹이 되어있었다. 약 50분에 걸친 사투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방파제 끝에는 정말 별게 없었는데 목표 달성을 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계단을 올라 그 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바닷소리 이외에는 고요했다. 그런데 뿌듯함 뒤에 몰려오는 걱정... 어떻게 돌아가지? 버튼만 누르면 숙소 안 침대로 순간이동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이런 생각까지 하는 내가 어이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계속 누워있다가는 잠들어버릴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서 그런지 길이 짧게 느껴졌다.


숙소에 가기 전 마트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바나나, 빵, 젤리를 샀다. 저녁을 이렇게 먹어도 크게 배고프지 않아 여행 내내 저녁을 간단히 때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아이러니하긴 하다.


숙소로 들어와 개운하게 씻고 저녁을 먹으며 오늘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았다. 흐뭇했다. 크노소스 궁전 앞에서 양갈래 머리를 하고 찍은 내 모습도 있었다.


'뭐... 꽤 괜찮은데? 양갈래 머리가 어때서~'


아침에 들었던 약간의 창피함은 그새 없어지고 행복함과 뿌듯함만 남았다. 그 이후로 양갈래 머리는 자신감 있게 종종 하고 다녔다. 내일은 산토리니 섬에 가는 날이라 짐을 쌌다. 이탈리아로 가기 전 편안한 휴식의 시간들을 산토리니에서 실컷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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