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용돈이 따로 있지 않았다. 가끔 큰 이모나 외삼촌이 찾아오면 용돈이 생기는 날이었다. 그 용돈도 오롯이 나의 몫은 아니었다. 불로소득이기에 누나는 80퍼센트의 세금을 원천징수했다. 귀한 지폐는 흔한 동전이 되어 꼬맹이 손에 들어왔다. 부럽게도 형의 세금률은 나보다 낮았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그 시절 대다수가 그렇듯 용돈은 늘 부족했고 먹고 싶은 건 넘쳐났다. 다행히도 나에게 작은 재주가 있었는데 하나는 도박!...이라 하기엔 애매한 짤짤이였고 또 하나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었다. 하나 둘 모은 구슬과 딱지는 문방구 시세보다 50퍼센트 이상 저렴하게 판매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정기복이 작은 내 성격과 도박은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렇게 짤짤이와 구슬치기는 꼬마 N잡러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코 묻은 돈은 늘 가뭄에 단비처럼 소중했다.
N잡의 두 번째는 미용 관련 전문직이었다.
"막내아들~ 이리 와보렴"
아빠의 부름이 있을 때면 앞에 가 앉았다. 아빠는 내 다리 앞으로 머리를 대고 누웠다. 그리곤 시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한 개에 10원이야."
그렇게 아빠의 새치를 하나하나 뽑니다. 그렇게 100~200원이라는 큰돈이 생겼다. 다행히 불법시술이라 비밀리에 진행되었기에 세금을 떼지 않았다.
퇴근길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니 여러 개의 하얀 새치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8살 둘째 딸을 불렀다.
"하리야~ 이리 와볼래?"
앉아있는 딸아이의 다리 앞에 누워 말을 건넨다.
"아빠가 하얀색 새치가 많이 생겼네. 새치 좀 뽑아줄래? 한 개에 50원 줄게~"
물가인상폭을 고려하여 인건비를 측정했다. 무섭다며... 자기는 못한다며 거부를 하는 딸아이. (분명 불법시술에 대한 법적 문제에 대한 두려움일 테다.) 걱정 말라며 괜찮다며 해보라며 등을 떠민다. 조심스레 한 개 성공.
'처음이 어렵지 열 번은 쉽다.'라는 속담처럼 2번째부턴 웃으며 순식간에 10가닥의 새치를 뽑아냈다. 녀석~아빠의 피가 흐르는 게 맞나 보다. 재주가 있다. 그렇게 딸아이도 신발정리에 이어 N잡러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있는 아빠 등뒤로 다가온 녀석. 아무 말 없이 아빠의 머리를 뒤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