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한마디가 주는 변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 과연 이것만으로 세상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내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만져지는 감촉들로 우리는 수많은 판단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너무나 제한적이고, 경험은 편협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느껴지는 것과 과거의 경험을 조합해서 판단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 현상에 대한 해석,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 모두 그 안에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해와 착각이 일어난다.
오해와 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혼자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책을 보든, 영상을 보든, 멘토를 만나든, 결국 누군가의 생각과 만나야 사고가 확장된다.
특히 사람에 대한 오해는 직접 만나 대화하는 순간 풀린다.
대화의 깊이와 시간, 말하는 사람의 진실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 순간의 모습만으로 오해했던 일들이 해결되기도 한다.
주말마다 동생과 집 앞 목욕탕에 가면 비슷한 시간에 오는 엄마와 딸이 있다.
항상 무표정인 그녀들 때문에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한번은 옆자리에서 샤워기 물이 튀었는데, 그들이 불쾌한 눈빛을 보냈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인데, 서로 웃어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기분 나쁜 표정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는 두 딸을 데리고 왔다. 엄마는 분주하게 의자를 챙기고 자리를 잡는다.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무표정인 것 같기도 한 세 사람.
집안 분위기가 그런 걸까? 어떻게 세 사람이 똑같은 표정일까?
매번 이렇게 마주치는데 계속 저런 표정인 건지 궁금했다. 나까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사우나에 들어가 혼자 앉아 땀을 빼고 있는데 그 엄마가 들어온다.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다.
저 분도 내가 웃으면 미소를 지을까?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는가.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만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두 딸과 오시는 거 보니 부러워요. 저는 아들밖에 없거든요.
저희 엄마도 고등학교 때까지 때를 밀어주셨어요."
앙 다물었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애들한테 맡겨놓으면 제대로 안 한다고요."
그리고는 자신의 교육 철학까지 꺼내놓으셨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
그동안 그녀들을 바라보는 나의 표정은 어땠을까?
나는 꽃을 좋아한다. 온 가족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꽃 선물을 받은 건 정말 손에 꼽는다.
이번 달에는 두 번의 꽃 선물을 받았다.
5월 8일 어버이날 저녁,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아 가족 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엄마는 너무 큰 거 아니어도 되니 빨리 들어와~"
작은 아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카네이션을 사 왔다.
아들 말로는 꽃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고 있을 때 엄마의 카톡이 왔다고 한다.
순서가 어떻게 되었든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남편과는 연애 기간도 길었고 결혼 19년 차다.
그동안 꽃 선물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그동안 사다준 적도 없는 꽃을
"이제 안 사줘도 되겠다"고 좋아했다.
얼마 전 모임 카톡방에서 부부의 날이라며 부부 사진이 올라왔다.
오늘도 술자리에 있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부부의 날이라네요. 빨리 들어오세요."
일 때문에 술자리가 잦은 남편이 손에 분홍색 포장지에 싸인 분홍색 장미를 들고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받은 걸 가져온 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 다시 물어봤다.
"그 꽃 어디서 났어?"
"샀지."
2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살짝 의심도 되었지만, 좋아하는 꽃을 선물받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처음으로 꽃을 선물했어."
그러고 보면 내가 꽃을 사달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남편은 다정한 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먼저 알아서 이벤트를 하거나 집안일을 돕는 일은 드물다.
나는 자발적인 표현과 도움을 원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결혼할 때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참 없었다.
살면서도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살아왔다.
불만은 있었지만 나에게도 단점이 있기에 문제 삼지 않으려 노력했다.
매일 같이 살아도 서로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나?
짐작하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
20년을 짐작하며 살았다면, 앞으로는 원하는 것을 말하고 물어보며 살아야겠다.
목욕탕에서 용기 내어 건넨 인사 한마디가 차가운 벽을 허물었듯이,
작은 소통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오해보다는 이해로, 추측보다는 대화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우리의 감각이 제한적이라면, 그 한계를 인정하고 더 많이 듣고 물어봐야 한다.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리고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