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의 행보는 재미있는 점이 많습니다.
별걸 다 팔고 있는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요. 제 맘대로 저는 이걸 '백화점 전략'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금융 앱에 뜬금없이 유통업을 가져다 붙이다니, 이상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핀테크는 다들 아시다시피 Finance와 Tech의 결합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모두 규제산업입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와도 우리나라에선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치킨집 사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동일한 규제의 틀 안에서 경쟁하다 보니 누구 하나가 확 튀는 상품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죠. 눈을 감고 생각해 봅시다. A은행의 상품이 B은행 대비 너무나 위대하고 혁신적인 것, 본 적이 있나요?
제가 은행의 계좌, 그러니까 수신상품을 써 온지가 20년이 넘는데, 그동안 본 것 중 그나마 가장 혁신적이었던 상품은 카카오 뱅크의 모임통장이었습니다. 은행들이 게을러서 혁신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온갖 규제가 있다 보니 뭘 할 수가 없는게 현실입니다.
본질은 차이가 없는데 비슷비슷한 상품이 포장이 바뀌어 유통되고 있는 게 현재 금융의 현실이라고 본다면 금융업을 유통과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없어집니다. A은행이고 B은행이고, 금리와 마케팅 외에는 차이가 없는 것이죠.
금융과 유통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본다면, 송금으로 시작한 토스는 전형적인 백화점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전략은 무엇이며, 토스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적어보고자 합니다.
모든 내용은 100% 제 뇌피셜이니 재미로 보시면 됩니다 :)
백화점이 뭔지는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죠. 하지만 백화점은 여러 가지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하나씩 볼까요.
1) 집객 - 우산, 장갑, 양말
토스를 볼까요. 토스 백화점은 다들 느끼시겠지만 송금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송금 지원금도 마구 주고, App 설치하면 현금도 줘 가며 모수 확보에 노력했습니다. 일단 앱을 설치하게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토스 나름의 집객인 거죠.
거기에 대리석으로 잘 치장한 환경입니다. 백화점 내부에는 교양강좌와 문화센터, 키즈카페가 있습니다. 깨끗한 화장실과 파우더룸 등 백화점은 들어온 고객이 백화점 안에서 오래도록 머물게 할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스 백화점은 어떨까요. 앱 내부의 다양한 콘텐츠, 리프레시를 유발하는 기능들(계좌조회, 타임라인), 부가서비스 (만보기, 행운 퀴즈)로 토스 앱은 앱 안에 오래도록 머물게 할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스 백화점 역시 고객을 어떻게든 잡고 있어야 매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3) 늘 동일한 고객 경험
백화점의 무서운 강점 하나를 더 볼까요. 백화점은 어느 매장에서 뭘 사더라도 동일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동일한 방식의 결제, 멤버십을 권합니다. 이게 무서운 것이죠. 파는 물품은 다양해도 고객 경험은 비슷하게 제공합니다.
4) 상품군과 가격
백화점은 온갖 상품을 다 팝니다. 식품부터 가전까지 없는 게 없죠. 百貨店이라는 한자 자체가 '수많은 상품을 가지고 있는 점포'라는 뜻입니다. 대신 가격은 비싸죠.
토스는 어떨까요. 현재 웬만한 금융상품은 토스 App 내에서 해결이 가능합니다.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금융행위는 거의 다 토스에서 가능합니다. 가격은 지금은 큰 격차가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향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실제 유통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핀테크와 금융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유통에서 일어나는 일로 토스의 미래를 점쳐본다면 어떨까요?
여기서부터도 제 나름의 뇌피셜이니, 재미있게 봐주세요.
꽤나 오래전부터 나오던 문제입니다. 백화점이 자사 입점업체나 납품업체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백화점 입점업체는 물건값의 30% 정도를 백화점에 수수료로 낸다고 합니다. '나의 채널 경쟁력 덕분에 손님이 몰려오니, 너는 비싼 수수료 내고 장사하라'는 것이죠.
이는 이미 천만이 넘는 고객을 보유한 토스 백화점도 가능한 전략입니다. A은행보다 수수료를 더 주는 B은행 상품을 우선하여 배치해 준다던가, 상품 추천을 하는 거죠. 사실 채널 경쟁력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 건 PC 웹에서 네이버가 충분히 보여준 바 있습니다.
다만, 매우 유연하게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겁니다. 모바일은 빠른 유입만큼이나 고객 이탈도 쉽습니다. 백화점은 원래 비싸다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있어서 괜찮지만, 토스와 같은 핀테크 앱은 '이 앱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는 앱이야'라는 신뢰 아래 사용됩니다.
실제로 꽤 많은 핀테크 앱들이, 고객에게 금융상품 판매 후 수수료를 취하다가 고객을 잃기도 했습니다. 정보인 줄 알았던 것들이 광고가 되는 순간 고객은 떠나갑니다. 금융상품 추천 수수료가 쏠쏠하기 때문에 떨쳐내기 쉽지 않은 유혹입니다. 그래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2) PB상품 유통의 시작
현실세계의 유통에서는, 어느 정도 채널 경쟁력이 생기면 PB(Private Brand) 상품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토스 백화점도 딱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하고, 증권사를 인수합니다. 다른 생산자의 상품 중계를 넘어서서 딱 PB 상품 제작과 판매까지 나서는 거죠. 소비자로선 나쁠 것 없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메기가 나타나 미꾸라지들을 건강하게 할지 모르니까요. 카카오페이도 증권사를 인수한 터라 내년부터는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3) 무한경쟁, 그리고 낮은 전환 비용
백화점이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면 근처에 다양한 경쟁업체들이 들어섭니다. 그러면서 상권이 더욱 커지기도 하고 출혈경쟁도 심화되곤 하죠. 토스 백화점이 자리를 잡고 잘 되는 걸 보면서 경쟁업체들도 입점 준비를 합니다. 성공방식이 보이거든요.
여기에 정부가 기름을 들이부었습니다. 바로 오픈뱅킹입니다. 은행이 계좌조회와 이체를 API화 하여 제공하고 비용은 1/10로 낮춰주는 제도입니다. 이는 핀테크 업체들을 위한 큰 배려로 보입니다만, 사실 1 금융권들에게도 기회입니다. 다른 은행 앱의 영역을 꽤나 공식적으로 침범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은행 앱 하나로 다른 은행 앱을 켜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겁니다.
이렇게 백화점을 구성하기 위한 기능들이 오픈뱅킹 정책을 통해 현실화되었습니다. 신한, KB와 같은 금융공룡들이 모바일 앱에 슬금슬금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합니다. 토스나 카카오페이 앱을 잘 뜯어보며, 무엇이 고객들에게 먹히는지 연구합니다. 전자제품에서 흔히들 말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하는 겁니다. 토스 앱 이상의 완성도를 목표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겁니다. 신한의 Sol과 같은 움직임이 그런 예죠. (아직은 갈길이 한참 멀어 보입니다만 ㅠㅜ)
핀테크 백화점 시장의 또 다른 무서운 특징은, 바로 고객의 전환 비용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토스가 수천만명의 유저를 가졌는데, 이 철옹성이 깨어지겠느냐' 고요. 대부분 카카오톡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만.. 다릅니다. 카카오톡은 네트워크 효과 덕에 앱 포기가 어렵습니다. 친구도 안 써야 나도 안 쓸 수 있죠. 하지만 핀테크 백화점은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가 쓰던 말던 상관이 없죠 그리고 천덕꾸러기 공인인증서가 오히려 전환비용을 떨어뜨려 줍니다.
후발주자는 먼저, 앱 설치를 유도하고 돈을 뿌립니다. 설치만 해도 몇 천 원 주면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이렇게 모인 고객은 공인인증서를 등록하게 됩니다. 국내 핀테크 앱은 모두 공인인증서를 통한 스크래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핀테크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었던 이 녀석 덕분에 'Single Sign On'과 '기존 데이터의 손쉬운 이전'이 모두 가능해져 버렸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전환 비용이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통장 사용내역, 카드 사용 내역 등이 인증서 로그인 한번으로 쉽게 넘어옵니다. 새 앱이 손에 쫙쫙 붙고 편리하면 언제든 다른 앱을 사용해도 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무한경쟁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결론 : 토스는 계속 뛰어야 하고, 우리는 행복하게 지켜봅시다.
토스 백화점은 앞으로도 미친 듯이 혁신하는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거대 자본들이 슬슬 쫓아올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핀테크 백화점 사업은 진입장벽은 낮고, 전환 비용도 낮은 전형적인 레드오션이 될 겁니다.
토스에게 참으로 다행인 점은, 기술혁신이 자본 투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업문화와 임직원 의식이 함께하지 않으면 우X은행의 위X톡 같은 괴작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토스는 한참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쫓아오는 금융공룡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계속 본토가 침략받고 있다고 느끼면 방법을 찾아 나서겠지요.
이 난리통에 소비자는 점점 더 행복해집니다. 그러니 지켜보죠. 토스 백화점의 선전과 다른 공룡들의 파이팅도 기원해 봅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있습니다. '이기는 편 우리 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