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까 Dec 26. 2019

내 '알바 아닌 나라' 알바니아 2

그러나 알고 보면 충분히 재밌는 알바니아 

티라나는  내가 도착하기 정확히 5일 전에  중앙광장 공사를 마친 상태였다고 했다. 광장 주변으로 보이는 고층건물과 쇼핑센터도 3개월  안에 완공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온 도시를 헤집어서 수년 동안 진행되는 공사 때문에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리가 만무였다. 


우리가 머물렀던 공유 숙박 민박집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시장 같은 티라나 시내 한가운데 있는 시장 인근이었는데, 그 시장 역시 바닥과 벽면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알바니아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내가 정보랍시고 전달해 준 부정적인 인상에 관한 것이 전부였던 용맹한 여선배는 소문과 실상의 괴리를 체험하곤  여행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유명 도시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해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구시가지가 있다거나 파리 에펠탑이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같은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 중 하나라는 편견을 보란 듯이 일갈하듯 활력과 매력 넘치는 젊은이들이 무엇보다 큰 인상을 건네주었다. 지나칠 정도로 정상적이고 표준적인 티라나 시의 이미지 자체가 적잖은 충격이었다.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에 대항하는 저항을 이끌어 낸 알바니아 민족의 영웅인 스칸데르베그의 이름을 딴 스칸데르베그 광장은 오페라 극장, 웅장한 모스크와 시계탑 등 알바니아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한마디로 말하면 서울의 광화문 광장과 비견할 만한 곳이다. 그동안 몇 년 간은 흙먼지와 고철과 통행을 막는 울타리들로 인해 세상에 둘도 없는 난장판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대리석 바닥에 아름다운 분수들이 남유럽의 더위를 식혀주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스칸데르베그 동상 앞으로는 수많은 청춘들이 유럽식 EDM에 몸을 흔들어 가며 새로운 광장을 맞은 기쁨을 한껏 표현하고 있었다. 


나름 우리를 위해서 조언을 주고자 하신 것이겠지만, 그래도 알바니아에 되도록 가지 말라고 해주신 분들의 말을 믿고 여행 일정을 바꿨더라면 이렇게 물 만난 고기들과 같이 뛰어노는 기분을 느껴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주의, 여전사 선배의 영롱한 목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알바니아 유명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한국어 번역 소설이 광장 옆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티라나와 피라미드 


티라나는 정말 사람들의 시간을 끌만한 명승지가 딱히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여기저기 걷다 보면 소소한 볼거리들이 널려있기는 하지만 파리에 가면 꼭 보아야 하는 에펠탑이나 샹젤리제 거리처럼 그 도시를 대표할 만한 건물이나 거리는 아직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바니아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은 국토에 여드름 딱지처럼 콕콕 박혀있는 벙커들과 시내 한가운데 있는 '티라나의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는 말 그래도 피라미드 같은 삼각뿔 형태의 건물로 1985년 사망한 엔베르 호자 기념 박물관으로 설계된 곳이었다. 1991년 알바니아 공산정부가 스러진 후 여러 차례 기능이 바뀌어 왔으나, 내가 찾았을 때는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 텅 빈 건물에 불과했다. 내가 그 역사의 텅 빈 공터를 찾은 이유는, 학교 윤리 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하고 알바니아의 현실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가던 때 알바니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론에서 오랜만에 접하게 된 것이 바로 이 '피라미드'였기 때문이다. 



1997년, 호자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무대 속에서만 살고 있다가 난데없이 현실세계로 걸어 나온 알바니아인들은 무대 밖 모습에 대해 무지하기 그지없었다. 알바니아는 유럽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최빈국이었으나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정말로 자비로운 지도자의 영도력 밑에서 아름다운 낙원에 살고 있다고 믿을 정도였으니까(라고 티라나 현지 가이드가 내게 말해주었다). 


자본주의 경험이라곤 전무했던 알바니아에 마피아와 결탁한 피라미드 자본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그것이 정부와 결탁하면서 전체 인구 중 대략 절반 이상이 이 피라미드 회사들에 전 재산을 바쳐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끝내 그 모든 것들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재산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에 가지고 있던 일말의 희망과 기대마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면서 전 국토가 내전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 윤리 교과서 이후 어디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어서 궁금하기만 했던 알바니아에서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다니... 수도 한가운데 흉물처럼 서있는 이 호자의 피라미드가 왠지 알바니아의 풍파를 예견한 것 같아, 난 이 피라미드에 가면 과거와 미래를 이어 줄 뭔가 신기한 힘이라도 느끼고 올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기능도 없고,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보란 듯이 무시하고 지붕 위에 올라가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있었다. 





벙커의 나라 알바니아 


그리고 알바니아에  벙커가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알바니아의 독재자 호자(Hoxha)가 그들의 원수 국가들이 알바니아를 침공했을 때를  대비해서 그 수많은 벙커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  원수 국가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였다는 것이다.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포함해서 호자와 미성숙한 외교 실력은 알바니아 사람들을 실체가 없는 원수들에 둘러싸여 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알바니아  사람들은 그런 호자가 정말 세계 최대의 지도자이며,  알바니아  같은 작은 나라에 그런 영웅이 머무르는 것이 인류가 저지르는 실수라고 믿었을 정도로 사람들은 호자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티라나 시내에 있는 벙커들은 박물관이나 예술관으로 변모해 있기도 했으나 부랑자들과 개들의 화장실이 되어 온 동네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천덕꾸러기가 되어있기도 했다. 



티라나에서 얼마 멀지 않은 다이티(Dajti) 산은 1600미터 정상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가 있는데, 한국 산세와 아주 꼭 닮은 이곳에도 터지지 않은 얼굴에 남은 곰보처럼 벙커들이 입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정도다. 국도를 따라 달리는 길목 어디서나 우리에게 입을 벌리고 있는 벙커들은 알바니아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문명의 흔적'인 듯했다. 



알바니아는 바티칸과  아르메니아와 마찬가지로 유럽 내에서 맥도널드가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는 국가이다.  그러나 독재자 호자가 살던 관저 앞엔 KFC가  들어서 있고 거대한 할아버지 사진이 호자 관저의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관저는 현재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그러나 정원은 깨끗이 정리돼있고 누군가 내부를 관리하는 듯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 



티라나의 타이완 센터 


티라나 시 한복판에 ‘타이완센터’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아직 스타벅스 같은 유명 커피 체인은 알바니아에 진출하지 않았지만 (2017년 현재), 그와 견줄만한 우아한 카페와 클럽, 가족들이 같이 올만한 놀이공원....... 과 비슷한 시설물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로 티라나 젊은이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라 했다. 


남유럽의 무더위에 지친 우리는 시원한 쉼터를 찾아 그 유명한 타이완 센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정확히 위치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시내 한가운데 있는 데다가 이름에 '타이완'이 있으니 아무래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타이완'이라는 이름을 연상시킬 건물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감각을 믿고 뭔가 근사한 카페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으나 우리 여전사 선배는 그곳은 타이완 센터 일리가 없다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극구 우겨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물어보는 데에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거침이 없다는 것을 시험 삼아 보여줄 양인 그 선배는 건물의 직원인듯한 사람에게 다가가 타이완 센터가 어디냐고 물었고, 우리는 바로 '그' 타이완 센터 안에 들어와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거기서 놀라운 사실은, 실제의 타이완 센터는 내가 들었던 것만큼 화려하거나 뭔가 잘 정돈된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과 그 '모던한' 건물 이름에 왜 타이완이 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거기서 마신 커피는 충분히 맛있었고 지친 다리를 쉬게 할 만한 고급지고 폭신한 의자도 충분했다.   


그리고 거기서 멀지 않은 지역에 호자 시절 당간부와 부자들이 살던 블록쿠(Blloku)라는 동네는 티라나에서 가장 ‘핫’한 동네가 되어있었다.  티라나에 간다면 그 타이완센터와 블록쿠를 꼭 들러보는 것이 좋겠다. 나름 시간도 잘 가고 재밌다. 




티라나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미국 대통령 자격으로 알바니아를 최초로 방문한 조지 부시의 이름을 딴 거리인데, 사실 그는 알바니아에서 24시간도  머무르지 않았다고 한다.  


조지  부시 거리에는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나름 그 지역에서는 셀럽에 속하는 듯한데 평상시에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온순하고 살갑게 굴다가 자기 영역에 남자 노인만 나타나면 컹컹 짖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 개는 조지 부시라고 불리고 있었고, 다행히 나에게는 짖지 않고 살갑게 대해 주었다. 


티라나의 최고 댕댕이 셀럽, 조지 부시 
유럽 유일의 회교국가라지만 돼지고기와 맥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실 수 있고 원가 독특한 질감의 요리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알바 아닌 나라', 알바니아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