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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Dec 17. 2019

내 '알바 아닌 나라', 알바니아 1

그러나 알아두면 충분히 좋을 만한 나라 알바니아 여행기 

 * 경고 - 이 글을 읽을 시에는 반바지를 입고 정장 양말을 신은 패션 테러리스트의 꼬락서니에 각별한 주의를 요함. 

알바니아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내 알바 아닌' 나라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알바니아 국민들이 자국 사회, 경제적 상황에 너무 실망을 느낀 나머지 해외에서 '알바'를 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이름이 있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인데, 해외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이 알바니아 영토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많다고 한다.  


알바니아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이끌고 인솔자 자격으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를 몇 차례 방문한 바 있는 지인분에게 숙박, 교통에 관련하여 몇 가지를 문의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전혀 생뚱 맞은 정보였다. 

 

“알바니아 가지 마요, 난 거기 가이드 비용을 세 배로 준다고 그래도 안 갈 거예요. 그런데 진석 씨는 거길 왜 가려고 그래요?”


글쎄..... 알바니아에 왜 가고 싶은지는 나도 잘 알지 못했다. 프랑스처럼 에펠탑을 보겠다거나, 이탈리아처럼 가서 파스타를 먹겠다던가 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던 건 아니다. 그냥 오랜 시간 동안 알바니아라는 나라에 가보고 싶었다. 가서 뭘할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가게 되면 뭐라고 보고 먹고 오게 되겠지, 그럼 심정에서다.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윤리 교과서에서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화 과정을 짧게 다루는 내용이 있었는데, 거기서 알바니아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내용들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고, 오직 내 머릿속에 각인된 내용은 유럽 유일의 회교 국가라는 사실이었다.  

 

기독교적 생활방식과 건축양식이 주를 이루는 유럽에서 회교국가라니...... 정말 당시에는 어린 지성의 내가 알고 있던 유럽 스타일의 건축양식을 뽐내는 유럽 국가조차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언제가 됐든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돈을 벌게 되어 유럽에 가게 되면 알바니아에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떠났고 유럽 대륙 안에서 20여 년을 거주하게 되었지만, 내가 가보고 싶던 알바니아에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알바니아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무척이나 멀었고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고, 막상 다녀왔다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욱 힘들었다. 유럽 속의 이슬람 국가 알바니아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사진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7년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알바니아와 이웃국가인 마케도니아 여행을 준비했다. 다행히 절친 선배 한 명이 그 여행에 동행해 주기로 했다. 나조차도 확신이 서지 않던 '알바니아에 같이 안 갈래?'라는 내 질문에 대한 절친 선배의 '갈게!'라는 대답 한마디는,  알바니아에 있는 초자연적인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울림 소리 같았다. (알바니아의 산세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서, 왠지 우리나라의 산신[山神]이 거기도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알바니아에 가본 사람은 모두 내 여행을 만류했다. 그 나라가 위험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유는 그 나라에 볼 것이 정말 없으며, 관광기반시설이 거의 없어 여행이 정말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엔베르 호자(Enver Hoxha)라는 기인(奇人) 독재자 때문에 국가의 거의 모든 것이 명분 없이 파괴되었고 형체가 없는 적국들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서 사방에 벙커를 짓느라 온 나라가 두더지 굴이 되어 버렸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나라는 끔직할 정도로 불편하고 재미가 없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단체관광버스에서 내리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둥, 재방문 의사가 가장 저조한 나라라는 둥, 뭐라고 제대로 볼 만한 곳이 진짜 하나도 없다는 둥....  하긴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말을 들으면 여행일정을 바꾸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러한 사실들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까.  


볼 것이 없다면 정말 얼마나 볼 것이 없는 것인지, 불편하면 정말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정말 내 눈으로 확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러므로 나는 알바니아에 가는 이유가, 그 나라가 얼마나 볼 게 없고 불편한지를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처럼 보였다. 나름 편하고 발전적인 유럽에서만 있다가 불편하고 볼 것 없는 지역에 가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 될 것만 같았다.

 

나와 같이 알바니아를 가기로 했던 선배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용맹한 여전사 같은 선배는 기꺼이 알바니아에 같이 가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 보는 작업에 자기도 동참하겠노라고 말해 주었다. 이제 이러한 활동 지향적인 여행보다는 편한 호텔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여행이 더 익숙해질 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알바니아는,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아니면 한번은 가본 사람들의 나쁜 기억을 한 번에 씻어줄 만큼 재미있고 흥미롭고 활력이 넘치는 국가였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알바니아 욕을 하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만한 했던 것이, 서울로 치면 광화문과 같은 스칸데르베르 광장에서 수년간 공사가 진행되면서 관광객뿐 아니라 티라나 시민들에게도 엄청난 불편을 가중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티라나를 방문했을 때는, 그러니까 2017년 여름 언젠가는 그 공사가 끝난 지 불과 2-3일 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고, 광장 공사 완료를 기념하는 행사가 광장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가 웅장하지는 않지만 다정하고 친근하게 시민들을 내려다보는 광장은 EDM 음악이 넘쳐흐르는 대형 무도회 장으로 변모해 있었고, 그 광장에서 리듬을 타는 알바니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들의 젊음을 공유하며 회춘한 알바니아의 에너지를 실컷 누릴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내 '알바 아닐 수 있는 나라'지만, 알고 보면 정말 이보다 더 재미있고 활력 있는 나라가 유럽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적잖은 '긍정적 충격'을 선사해준 나라와 국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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