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까 Dec 09. 2019

그러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는데, -ㄴ데’라는 어미이다. 


만약 이 어미가 있는 문장을 영어로 번역해 보라고 하면 대다수 but, however와 같은 접속사를 사용하기 일쑤다. 


"오늘 비가 오는데, 날씨는 안 춥네"

" 방 안에 분명 사람이 있는데 나오질 않아요!"


‘-고’,-‘지만’,’-니까’처럼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큼 파악이 가능한 특정의 의미를 가진 어미도 있지만, 놀랍게도 이 어미는 대부분이 한국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가 없다.


게다가 한국사람들이 유독 많이 사용하는 어미인지라 외국인들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지만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면 애를 많이 먹는다. 


교과서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하자면, 이 어미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담화가 벌어지기 전 상황을 설명하는 기능'이 있다. 


말하자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담화가, ‘내가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벌어졌다거나 ‘나는 어떤 상황에 있었으나 결과는 다르게 벌어진’ 것이라던가, 아니면 어떤 제안을 할 때 ‘지금 상황이 이러하니까’ 내 제안을 따르라는 의미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문화와 담화의 문맥, 화용 방식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 이 어미는 상황을 제시해 주는 기능을 가진 어미 어쩌고저쩌고'라고 설명해 준다고 이해할 리가 만무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언어생활과 담화 구조를 파악하는 단계에 이르기 훨씬 이전에 이 어미가 교과서 상에 나오곤 한다. 그래서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하고 뒤로 미루기도 힘들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이 어미는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그때’ ‘그러니까’ 같은 뜻을 모두 가지고 있고 많은 연습을 통해서 상황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 시도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보는 게, 보통 외국인들이 공부하는 한국어 교재에서 이 어미를 사용하기 위한 연습은 보통 몇 과에 걸쳐서 나온다. 거의 문법 교육계의 ‘거시기’ 격으로 보면 된다. 


"내가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그 녀석이 저기서 뛰어오더라고" 

- 여기선 '버스를 타려고 할 때'라는 의미가 강하다. 


민석은 접시를 집어 들었는데, 상희는 와인잔을 먼저 잡았다. 

- 여기선 '집어 들었고'라는 연결어미를 사용할 수도 있다. 


"눈이 오는데, 더 두꺼운 옷을 입고 가지 그러니?" 

- 이 문장에선 '눈이 오니까'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해석이 가능하나, 차이가 있다면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전에 주변 상황에 대해서 주의를 끌고자 하는 특별한 기능이 첨가된 것이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주의를 끌지 않으려면 다른 어미를 사용하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행동의 결과보다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을 더 강조할 때 이 어미를 주요 사용한다. 결과보다 상황을 더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 


내가 요즘 들어 느끼는 점은, 과거에 비해서 최근에 이 어미를 쓰는 습관이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에 창작된 작품들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정보를 확실하게 소개하는 자료들에서는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지만 일상적인 대화나 담화에서는 놀랄 정도로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다른 언어권에는 이와 대응할 만한 어휘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나 역시도 무심코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을 검토해보면, 확실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어미 대신 ‘-는데’가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나만 가진 버릇은 아닐 것이다. 


한국어에는 왜 이러한 기상천외한 어미가 존재하고 또 많이 쓰이는 것일까. 


아마 이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는 것 같아요’라는 말과 많이 상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좋아요’라고 확실히 말하지 않고 ‘저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뭉뚱그려 말하거나, ‘음식이 맛있다’고 하지 못하고 ‘맛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정보의 확실성도 떨어지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나 신념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듣는 사람 역시 그 정보를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 인식을 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런 어법을 아주 좋아한다. 아마 그런 의미상의 단점들을 일부러 염두에 두고 자신이 만든 담화로 인한 결과와 책임을 줄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는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크게 따져보면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담화와 정보가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듣는 사람의 의도와 문맥에 따라 변하는 것이 가능한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훗날의 책임을 면해 보려는 잠재된 노력의 반영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하는 사람조차 어떤 문맥을 적용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 모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지고 있다. 방송 청문회에서 자주 보는 그런 어르신들 이야기만이 아니다.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 사용으로 인해서 한국은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비율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하지만 정작 문장에서 올바른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실질 문맹률 역시 세계에서 최고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듣고 접하는 문장을, 우리는 정말 제대로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 말이 지칭하는 대상과 가치를 우리는 모두 똑같이 이해하고 같은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과를 좋아하는데 그는 배를 좋아하더라’는 말이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그는 배를 좋아한다’는 동등한 관계를 의미하는 말인지 ‘나는 사과를 좋아하지만 그는 배를 좋아한다’는 의견이 상반됨을 지칭하는 말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냐는 말이다.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문장의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직접 보지 못하고 문자로만 이 정보를 받게 되면 그 파악이 극도로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적당한 이모티콘과 사진을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도적으로 그 어미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내가 아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하고 살고 싶다. 


본 사진은 특정 내용과 연관이 없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영어를 못하는 것은 남 탓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