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까 Dec 06. 2019

영어를 못하는 것은 남 탓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라트비아에 파견교수로 있을 때, 라트비아에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 두 명을 만났다. 


그냥 차 마시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데, 외국어 학습에 대한 말이 나왔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외국생활 하기가 많이 어려울 것 같다는 고민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외국어를 많이 하는 것이 좀 놀랍다는 말도 해주었다. 


흠... 내가 외국어 자체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언어를 좀 많이 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언어에 특출 난 재능이 있다거나 유별나게 유창하게 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냥 언어를 좋아하고 쓰는데 거침이 없고, 틀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 뿐.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구사할 수 있는 5개다. 한국어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언어들을 꽤 구사한다. 절대 자랑은 아니다. 


사실 유럽 내 벨기에, 네덜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것은 꽤 일상적(?)인 일이고, 핀란드처럼 특별한 환경에 처해 있어 나름대로의 특별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도 정상적은 교육을 받으면 3개 국어, 거기에 외국어에 관심이 있어 나름 공부를 한 경우에 4-5개 국어를 하는 경우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케냐 여행에서 만난 마사이 족 청년이나 나이로비 시민들의 경우에도 공용어인 영어, 통용어인 스와힐리, 자신들의 부족어 세 가지를 구사하는 것이 기본이니, 영어만 잘하는 사람만 만나도 부러움과 경외심으로 눈이 휘둥그레 해 지는 한국에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일민족국가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케냐의 부족 언어는 한국의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 정도의 차이가 아닌 전혀 다른 언어들이다. 


한국사람들이 핀란드나 케냐 사람들보다 두뇌가 덜 명석하다거나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두려움이 많고 막상 배웠어도 직접 사용할 만한 용기를 내기가 어려울까. 


내 생각엔, 한국 사람들은 유독 영어를 '잘' 해야 하는 것에 민감한 것 같다. 


자신이 영어를 '잘' 하지 않으면 왠지 영어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 말이다. 그런 강박관념은, 내 생각엔 한국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외국어에 관한 담화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말을 분석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영어 잘해요?"

"일본어 잘해요?"

"중국어 잘해요?"


우리는 외국어 구사 가능성에 대해 물어볼 때 꼭 '잘'이라는 표현을 첨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언어들을 보면 굳이 언어를 아느냐고 물어볼 때 '잘 아느냐'라고 묻는 경우는 없다. 


Can You speak English WELL?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외국인의 외국어 실력을 듣고 칭찬해 주는 경우에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 


한 가지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어쩌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도 유럽에서 몇 년째 한국어를 가르쳤지만 나 자신도 한국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 자신감 있게 말하기가 겁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한국어를 얼마나 '잘' 한다고 생각을 하시는가. '몇 월 며칠 (?)/ 몇 월 몇 일 (?)'은 잘 쓰시는지. 맞춤법 교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나 정확하게 글을 쓸 수 있는지, '깻잎'을 [깨싶]으로 읽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지,  '비가 오니까 우산을 가지고 가라'는 맞는데 '비가 와서 우산을 가지고 가라' 이 문장이 어색한 이유를 설명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일간지 1면에 나오는 정치기사를 읽고나서 모두 이해할 수 있는지..... 


글자 해독력이 아닌 문장 해독력을 따져보면 '내가 한국어를 잘한다'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어인들 오죽하랴. 


어딘가 외국에서 현지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굳이 완벽하고 수려하고 유창한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말은 아니다. 알고 있는 수준의 표현과 문장력을 통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용도의 정보를 얼아나 알아낼 수 있느냐 하는 정도라고 치면 될까.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기능에 필요한 수준만 하면 되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의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자기에 필요한, 문맥이 자기에게 익숙한, 자기가 속해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아니 웬만큼 피력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끝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구사력의 기준은 바로 내 자신에게 필요한 정도, 딱 그 수준이다.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전혀 모르는 분야나 주제에 관한 담화를 접하면 그 말이 한국어라 하더라도 이해를 하기가 몹시 어렵다. 솔직히 나도 9시 뉴스 첫 뉴스로 나오는 내용들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영어를 공부하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내용의 담화도 다 이해해야 한다는 '착각'과 '강박'에 빠져있는 것 같다. 


지금도 이런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희 학창시절에는 영어를 공부한답시고 영자신문을 구독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 대부분 가장 어려운 내용이 나오는 1면부터 평상시에는 쓸 일이 없는 고차원적인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서 복잡한 문장을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분석했다. 그리고 중간에 다 영어공부를 포기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왠지 영어공부를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배운 영어를 얼마나 써먹을 수 있나. 

술을 먹으면서 외국어를 공부하면 잘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듯 하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영자신문 1면을 한국어로 번역해줘도 이해할 만한 배경지식이 없다. 정작 우리는 한국어 신문을 보면 자기가 관심 있어하고 재미있어하는 부분부터 골라보지 않는가??? 조선일보 1면부터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나는 개인적으로 신문을 맨 뒤쪽에서부터 본다. 현지 신문도 그렇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없듯, 이 나라에 의회, 내각에 뭔 일이 있든, 어떤 정책을 펼치든 난 알바 없다. 그런 것을 모른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물론 그런 상황을 알아야 할 땐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보통 자주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것은 독해나 이해가 아닌 '연구'나 '조사'라고 부른다. 언어를 그냥 구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리고 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영어는 이미 국제 언어이다 보니 거의 세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고 또 각 지역별로 대륙별로 영어의 특성이 많이 차별화되었다. 우리는 백인들이 사용하는 영어권에 온갖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인도권, 스칸디나비아권, 아프리카권 등 그 민족들의 특성에 따라 영어도 점차 분화되어가는 추세에 있고, 한국인들도 정말 영어권에서 태어나서 자라지 않는 한 우리가 가진 언어적 특성을 바꿀 수는 없다. 문장을 구성하는 사고방식도 그렇지만. 고질적인 발음의 문제도 고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폴란드어의 예를 들어보자. 자신을 폴란드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폴란드가 아닌 주변 국가에서 태어났고, 집안에서 폴란드어를 사용하면서 출생 국가의 언어를 같이 사용한 사람은. 그 사람의 폴란드어 실력이 아무리 좋다 해도 폴란드 현지인의 폴란드어와는 금방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건 절대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니며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폴란드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독일어, 프랑스어와 같이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도 마찬가지다. 스위스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독일어를 '잘' 하겠지만 독일 베를린에 사는 독일 사람의 말과 똑같이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스위스의 독일어가 우습다고 비웃는 독일인은 그의 인성이 잘못된 것이다. 


영어도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영어적 특성이 있는 것이고, 우리가 영어를 잘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기존 영어권 사람들도 우리가 하는 영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더 거침없이 마구마구 우리식 표현을 쏟아부어야 한다. 소통이란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외국어 언어교육전문가도 아니지만, 혹시 영어 때문에 외국에 나오는 것이 골치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그딴 생각이랑 집어치우고 우선 나오라고 하고 싶다. 


영어는 '절대' 잘할 수 없다.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는 잘하듯 못 하듯 그냥 하는 것이다. 특히 유럽 사람들이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국인들과의 차이는 그냥 자신감에 있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