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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Jul 13. 2022

예루살렘에서 발트3국을 만나다.  

2017년 12월 24일 난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도 아직도 제대로 짐을 쌀 줄을 모른다. 항상 짐이 너무 많거나 너무 모자르다. 옷을 많이 넣게 되면 보통 한두벌 빼고는 여행 내내 입지 않거나 너무 적은 경우라면 항상 추워서 오돌오돌 떨다온다. 이번 예루살렘은 그 후자의 경우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오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너무 춥다. 게다가 며칠간 무리를 한 탓인가 삔 무릎이 아침부터 욱신거리고 아프다.... 아, 비가 내리려고 그랬는가 보다. 


항상 사진이나 동영상에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보게 되다니.... 첫날은 그 도시의 분위기나 파악하는 차원에서 무료도보관광에 참여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훌륭한 가이드 덕분에 구시가지의 곳곳을 잘 구경할 수 있었다. 저 황금지붕을 얹은 성당은.....뭐더라. 아무튼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날씨는 둘째 치더라도 어제와 예루살렘과 오늘의 예루살렘은 여러모로 사뭇 달랐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 중 하나인 다마스커스(다메섹) 대문 (Damascus Gates)은, 예루살렘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안심을 시키던 민박집 주인마저 '요즘 들어 칼부림이 자주 나는 곳이니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장소였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우연찮게 그곳에 이르게 되었다. 걱정처럼 위험해 보이진 않았으나 이스라엘와 무슬림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모습을 보니 유럽에서 익히 보던 자유스러운 모습의 도시와는 실상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다. 경찰들의 감시 속 유대인도 무슬림 상인들도 별 문제 없이 오가는 모습에, 적어도 오늘은 칼부림이 났다는 기사는 나오지 않겠구나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 유명한 다마스커스 대문. 예루살렘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빌면 이곳으로 들어가는데 훨씬 더 재미있다고 하는데 트럼프의 이스라엘 발언 이후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범죄가 종종 발생한다고 해서 다른 출입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우려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몸소 체험하게 된다. 입구엔 정말 장전된 총을 든 군인들이 삼삼오오 서있고, 그래서 좀도둑이나 소매치기 같은 범죄에선 더 안전해진 느낌이다.



바로 그날 오후, 유대인 홀로코스트 연구와 자료수집의 중심지 격인 야드 바솀에 다녀왔더랬다. 폴란드에 살던 때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마이다넥 같은 집단수용소를 방문하면서 이름을 익히 듣던 곳이라 언제 가볼꼬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막상 오게 되니 정말 꿈만 같다. 


전세계에서 수집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전시해놓은 박물관의 전시력이 대단했고, 후세에도 그런 역사가 잊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룩해 놓은 그들의 성과도 역시 너무 훌륭했다. 한가지 염려가 되는 점은, 홀로코스트와 유대인 강제이주가 자행된 여러 유럽 국가들의 자료에 비해서 발트3국은 나치와 함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나치협력자들의 협력이 너무 심하게 두드러지게 소개가 된 것이다.


폴란드어와 리투아니아어로 적인 종이를 보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가슴이 짠하기도 하다.


사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사람들이 나치와 협력하여 직접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역사적 검증을 통해서 이미 잘 드러난 사실이지만 소련과 나치 사이에서 발트3국이 처해있던 특별한 조건이나 전후 사과 등의 이야기 등은 전혀 제시되지 않아 이 지역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발트지역에 대한 좋지 않은 오해를 심어줄 수도 있겠다 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내가 알 바는 아닌데......자꾸 신경이 쓰인다. 다행이라고 할만한 것은, 현지 지명이 제멋대로 적혀 있어서 거기가 아닌 다른 나라말이려니 하고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 


야드 바솀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전시물인데 에스토니아에서 자행된 학살사건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치와 에스토니아 협력자(collaborator라는 단어를 썼다)들이 자행한 사건으로 소개되었다. 하긴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게 된 조선군인들도 전쟁에 나간 건 맞다. 하지만 그들은 징용군이지 협력자가 아닌 것처럼, 발트지역에서 자행된 사건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하게 표현을 정리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발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지역주민들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또 모두가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거주하고 있던 유럽 국가에선 모두 공통적인 일이었다)


영어 오디오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녀보니, 위에 말한 그런 사안들을 제껴두더라도 가슴이 찌릿찌릿하거나 울컥해주는 전시물과 자료들도 있어서 꼬박 4시간 동안 박물관에 있다 오게 되었다. 혹시 다음 번에 이곳을 찾을 사람이 있을까는 모르겠다만 박물관 주변으로 조성된 공원은 정말 별로다. 나처럼 발목이 지릿지릿한 사람은, 그냥 박물관 안의 전시물만 보고 나오는 것이 제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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