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제시
가설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내가 보유한 자료를 포함하여 이미 발표된 논문의 결과를 살펴보기 것이 연구의 시작이었다.
팔색조는 국제적 멸종위기 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동물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멸종위기 종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체수가 적은 종은 환경변화에 취약해 멸종 위기에 자주 노출된다. 그들의 숫자를 늘려, 환경 변화에도 종이 유지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개체수를 늘리는 보호 전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상적인 방법은 야생에 서식하는 개체들을 건드리지 않고 간접적으로 생존확률을 높여주는 것이다. 먹이 가용도를 높여준다든지, 충분한 먹이를 사냥할 수 있는 서식지를 확보해 준다든지, 포식자를 피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해 주는 전략이 적용 가능할 것이다.
만약 종의 숫자가 100마리 언저리로 너무 적은 경우,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멸종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게 숫자가 적다는 것은 종이 마주한 환경이 이들의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간접적으로 종의 적응도를 올려주는 행위로는 멸종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경우 집단 전체를 생존에 적합한 환경으로 옮겨주거나,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해 그 안에서 번식을 유도하는 전략이 적용 가능할 것이다. 부화장치로 알을 부화시켜 부화확률을 높이고, 모두가 생존할 수 있도록 충분한 먹이를 제공한다면 그 숫자를 야생에서보다 빠르게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이 쉽지, 인위적인 환경에서 번식을 유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최적의 환경을 찾고 제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그렇게 편하게 키워졌기에 야생적응 훈련 역시 진행돼야 할 것이다.
팔색조의 개체수는 대략 10,000 마리이다. 그들의 개체군 크기를 유지 및 증가시키고자 번식 생태 기반의 간접적인 보호 전략을 제시하고자 했다.
교수님과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혹은 그나마 봐줄 만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우리는 팔색조 부모가 새끼들 식단의 대부분을 지렁이로 구성하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고민했고 하나의 가설을 떠올렸다.
가설:
팔색조는 번식기 활동 영역의 크기는 주요 식단인 지렁이의 풍부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팔색조 새끼의 주요 식단은 지렁이이며, 부모 역시 (정확한 비율은 모르지만) 지렁이를 먹는다. 이들에게 지렁이는 우리의 쌀 같은 존재이다. 지렁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지는 번식 성공률과 직결될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한 숫자의 지렁이를 사냥할 수 있는 서식지 면적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위 가설이 타당한지 평가하기 위해 관찰 데이터 기반의 자료를 사용하기로 했다. 만약 이 가설이 신빙성 있다면, 서식지 크기 기반의 보호 전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팔색조 번식지 중 파편화가 심한 지역에서는 지렁이 가용도를 증가시켜 상대적으로 좁은 파편화 서식지에 더 많은 팔색조가 번식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팔색조 서식지에서 개발을 한다면 팔색조를 위해 최소한의 자연 서식지 면적을 지키며 공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가설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내가 보유한 자료를 포함하여 이미 발표된 논문의 결과를 살펴보기 것이 연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