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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Dec 14. 2021

2021년 10월 1일 더블린에서..

더블린 2일째

2021년 10월 1일. 더블린 2일째


새벽에 2번 정도 깼다. 2번째 눈을 떴을 땐 시계가 4시를 향하고 있었다. 요즘은 몸이 피곤한데도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새벽 4시가 기상 시간이 된 지 꽤 된다. 집중이 잘 되어서 글쓰기 좋기 때문이다. 몸이 적응한 건지 이젠 3시 50분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마무리 단계에서 한동안 집중을 못 하고 미적미적 거리던 글을 다시 들여다봤다. 여전히 내 느낌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시간만 보내고 있던 글이었는데 오래간만에 집중이 잘 됐다. 문장도 대폭 바꿨다.


8시쯤 되니 졸리기 시작했다. 9시에 아침 식사를 예약했기에 다시 자는 건  포기하고 슬슬 준비하기로 했다. 샤워하려고 욕실로 가다가 자는 딸 옆의 탁상용 시계를 봤더니 7시였다. 1시간이 늦었다. 4시에 일어나서 봤을 때도 이 시계의 시간은 달랐다. 그땐 그냥 호텔 시계가 고장났다고만 생각했다. 내 휴대폰이 틀렸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당연히 호텔 탁상용 시계가 잘못됐다고만 생각했다.


영국, 아일랜드는 독일보다 1시간 늦다. 커튼을 열어보니 새벽이 아니라 한밤중이었다.

호텔 시계와 내 휴대폰 시계가 정확히 1시간 차이가 나는 걸 보니 그제야 문득 내 핸드폰에 시간 자동설정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휴대폰의 자동 설정이 꺼져있었다. 휴대폰이 틀릴 거란 생각 자체를 못한 나의 선입견과 고작 몇 번 고장난 호텔 탁상용 시계를 봤을 뿐일 텐데 탁상용 시계를 믿지 않은 나의 편견이었다. 얼마나 많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는 건지...




아침 식사는 메뉴를 보고 주문할 수도 있었고(A la carte), 간단한 뷔페도 같이 세팅되어 있었다. 뷔페여도 내가 직접 음식을 집어 올 순 없고 직원에게 말해야 한다. 난 뷔페는 이용하지 않고 아침 식사용 메뉴판에서만 음식을 선택했다. 제법 많은 메뉴 중에서 좋아하는 에그 베네딕트(egg benedict)를 시켰다. 메뉴판에는 주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샴페인 프로세코 화이트 와인을 비롯해 칵테일인 미모사와 블러디 메리도 있었다.


미모사가 뭘까 하며 검색해 보니 오렌지 주스에 샴페인을 섞은 거였다. 마셔본 적이 있는 칵테일이었다. 겨울에 7주간 있는 토요 스키 캠프에 참가했을 때, 스키장 가는 아침 버스에서 누군가가 줘서 마셔본 적이 있다. 스키버스에선 많은 사람에게 나눠줬기에 저렴한 프로세코를 섞었다.


이름이 미모사였구나!  

싱가포르에서 봤던 식물 이름이 미모사였다. 잎사귀를 살짝 건드리면 양옆 이파리가 하나로 붙어 버리는 식물이었다. 그 식물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미모사 공주가 잘생긴 소년을 보고 부끄러워 한 포기 풀로 변해버렸는데, 그 식물 이름이 미모사이다. 참 이쁜 이름이다.


칵테일 이름도 미모사 식물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기원은 불분명하다고 한다.

1925년 Hotel Ritz Paris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도 하고 수 세기 전에 발렌시아를 비롯한 스페인에서 마셨다고도 한다. 호텔에서 유럽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에 종종 마시는 걸 봤다. 주문하려고 하니 칵테일은 따로 돈을 내야 하는데 마시겠냐고 묻는다. 11유로씩이나 주고 마실 정도로 마시고 싶은 건 아녀서 괜찮다고 했다. 남편이 옆에서 박장대소를 한다.


내가 돈을 굳혀 줬구먼, 웃긴!




오늘은 더블린 캐슬과 킬마이넘 감옥을 둘러보기로 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세인트 스테판 공원(St. Stephen's Green)을 통과해서 갔다. 이 공원은 원래는 중세시대 기독교 최초의 부제이자 순교자인 세인트 스테판(성 스데파노)에게 헌정된 나병 전문 병원이었다.


처음 습지대였던 곳을 주택지로 개발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왕자가 죽은 후 이곳을 앨버트 그린이라고 짓고 싶었지만, 더블린 공사와 도시 사람들의 반대로 거부됐다. 기네스가 돈을 기부해서 지금 형태의 공원으로 완성되었다. 이곳에선 영국에 투쟁하는 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항의도 있었다는 표지판이 있어서 놀랐다.

사진 왼쪽: 아일랜드 독립투사 제레미아 오도노반 로사(Jeremiah O'Donovan Rossa, 1831-1915) 기념비
사진 왼쪽: 1906년에 세워진 푸실리에 아치, 더블린 세인트 스테판 공원(St. St. Stephen’s Green)


어젠 흐리고 비 오더니 오늘은 맑다. 그렇지만 기온은 11도 체감온도 9도.

초겨울이다. 가지고 온 옷을 전부 껴입고 목도 스카프로 둘둘 말았다. 여행 내내 이렇게 같은 복장으로 다녀야 할 거 같다.


마스크도 썼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럽도 마스크 쓰는 게 일상이 되니 아무도 우리를 이상하게 보진 않아서 좋았다.


유럽에선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위험인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엔 마스크를 쓰면 이상하게 봤다. 독일은 마스크 쓰고 운전하면 경찰한테 잡히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알게 됐다.


코로나 이후 차 안에서 마스크 써도 괜찮다는 규정이 나왔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도 있었다. 일본, 중국, 한국에서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흔한 일이지만, 유러피언들에겐  상당한 교육이 필요한 일이었다.


코로나 감염도 줄이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한결 따뜻해서도 좋았다.





트리지니 칼리지 더블린은 아일랜드 친구 D의 모교이자 도서관이 이뻐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도서관은 입장료가 있었다. 사진 한 장 찍고 오래된 책 구경하기엔 비싸서 포기했다. 대학 입구엔 경비들이 서 있고 학생 외엔 입장 금지라는 표지판도 있었다. 블로그엔 학교 캠퍼스를 들어간 글을 봤는데, 코로나 기간이라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블린은 도시가 고급스럽거나 이쁘진 않았다. 요즘 말로 포토존은 아녔다. 그러나 더블린만의 멋이 있었다. 오전 11시경부터 거리 곳곳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전자 기타를 메고 존 레넌의 ‘이미진(Imagine)’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중년 아저씨,  키보드로 내가 좋아하는 스탄 게츠(Stan Getz)의 곡을 연주하는 아저씨 등 익숙한 음악이라서 더 좋다.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하고 여행객 기분을  들뜨게 해줬다. 여행 온 느낌을 더 들게 해줘서 신났다.


패션도 다른 유럽 나라와 달랐다. 이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영국다웠다. 자꾸만 내가 런던에 와있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셜록 홈즈 패션, 헤비메탈 록밴드 패션이 종종 눈에 보였다. 아시아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도 서울, 토쿄, 홍콩이나 상하이가 같은 분위기로 느껴질는지 궁금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보였다. 거리에는 사람들도 많고 학생도 많았고 종종걸음을 걷는 직장인들도 보였다. 뮌헨에선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종로 3가와 5가 사이를 걷는 기분이다. 정겹기도 하고 어수선하고 복잡하기도 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핫초코를 사준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앞에 쥬얼리 샵이 눈에 띄었다. 좀 촌스러워 보이고 오래된 가게여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입구를 서성이고 있었다. 뭐지? 하며 다가가 보니 초록색 클로버 등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팬던트가 있는 목걸이랑 귀걸이를 파는 곳이었다.


은 제품의 액세서리 가격은 29유로, 39유로 정도였다. 더 비싼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저렴한 편이었는데 주인은 손님이 한 명 들어갈 때마다 문을 잠갔다. 신기했다. 그만큼 강도가 많다는 뜻인가?  오히려 우리 나라에 있는 귀금속 상가의 보안은 너무 허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념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귀찮았다. 난 쇼핑하는 게 귀찮을까? 윈도 쇼핑(아이쇼핑)이건 필요에 의한 쇼핑이건 귀찮다. 참다 참다 정말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사러 간다. 누가 나한테 어울리고 필요한 걸 사다 주면 정말 좋겠다는 상상을 종종 한다.


바로 눈 앞의 가게에 들어가는게 귀찮아서 포기하고 왔는데, 호텔에서 일기를 쓰다 보니 그냥 돌아온 게 후회되었다. 결국 마지막 날 나와 딸아이를 위한 귀걸이를 사 왔다.




더블린 도시 전체가 이쁘단 느낌보다는 어수선한 느낌이 강했지만, 가게 하나하나를 보면 이쁜 가게가 많았다.


간판 글씨체도 이쁘고 코믹스러운(만화 같은) 광고물도 많았다. 눈에  띄는 간판들을 보면 지금까지 내가 많이 다녔던 유럽이랑은 달랐다. 오히려 한국 같은 친근감이 더 들었다. 런던은 익숙해져 있었던 건지 유심히 살펴봤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간판이 영어에다가 필기체가 아니라서 무슨 가게인지 바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속이 시원했다.

마지막 간판은 작은 옆 간판도 그렇고 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의 간판을 연상케 해서 깜짝 놀랐다.

가장 오래된 우체국 앞에서 사진만 달랑 한 장 찍고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수박 겉핥기식 관광이 우리 전문이다. 우체국 가는 길에 수많은 조각상이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조각상은 19세기 아일랜드 국민 시인 토마스 무어였다. (영국의 인문학자이자 '유토피아'의 작가인 토마스 모어와는 다른 인물)

추워서 카페에 들어갔다. 이곳도 백신 접종을 확인했다.  더블린에서는 어디를 가나 백신 접종 완료자인 지를 확인했다. 겉과 달리 실내가 현대식으로 이뻤다.


통유리창 너머로 리피 강(River Liffey)이 보였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의 그림자가 바람에 일렁이면서 테이블에서 춤추는 모습이 참 이뻤다. 어떻게든 즐기려는 여행자의 마음 때문일까? 여행자의 눈에는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즐겁고 신기하다.


이런 게 여행을 떠나는 이유겠지. 관광보다는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 느껴져서 여행이 좋다. 그래서 여행은 목적지가 어디냐이기 보다는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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