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를 가장 단단히 붙잡아주는 사람들
처음엔 둘만의 세상이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드라마를 보고, 퇴근 후 서로의 하루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건 때때로 부딪히고, 또 맞춰가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그마저도 “이게 결혼이지” 하며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가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관계의 무게 중심이 ‘나’에서 ‘가족’으로 옮겨갔다. 하루의 대부분은 내 시간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아이 중심의 세상에서 살았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 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그를 위해 식탁을 차리는 삶.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일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소파에 앉아 쉬는데 불 꺼진 거실 창문에 생기 없는 내 얼굴이 비쳤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내 삶의 중심을 이렇게 많이 내어주게 된 걸까?’ 하루의 대부분을 누군가를 챙기고, 누군가를 위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또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싱글이던 내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변모하는 과정이구나>
지쳤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만 예전의 ‘나’를 너무 오래 미뤄둔 건 아닐까. 그게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가족이란, 누군가의 인생에 발을 들이는 일이다. 그 안에는 책임과 희생이 따라온다. 때로는 이해받지 못하고, 어떤 날엔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족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오래 기억해 줄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릴 땐 “사람은 혼자 살아야 자유롭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군가의 웃음과 눈물에 내 마음이 움직이는 걸 보면, 그게 진짜 살아 있다는 증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게가 버겁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부모가 되면서, 또 딸로서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할 나이가 되면서, 나는 관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사랑이 단지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수고와 인내, 그리고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건 일로 맺어진 인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깊이였다.
가끔은 아이가 울고, 남편과 다투고, 부모님과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이게 다 뭐지?”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하루가 끝나고 모두 잠든 밤, 조용히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모든 게 결국 사랑이었구나.’
그때야 비로소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녹아내린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따뜻하지만, 동시에 좁고 답답할 때도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법을. 사랑이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는 것’ 임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서툴지만, 가족 안에서 나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딸로 살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기 위해.
아이와 함께 하는 인생의 긴 여정에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