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만든 인연, 일이 가져간 인연

by 유트루

20대와 30대의 나는 늘 일이 중심이었다.


PR 담당자, 마케터, 창업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 시절의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만 했다. 기자, 클라이언트, 동료, 협력사…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 점심마다 약속을 잡고, 저녁이 되면 또 다른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맺어진 관계들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다채롭고 활기찼던 만남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그때의 나는 “사람을 만나야 일이 굴러간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기자 한 명의 기사, 클라이언트의 한 마디 피드백이 회사 성과를 좌우했고, 누군가와의 좋은 관계가 곧 성과와 연결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움직였고, 내 명함집은 어느새 빼곡히 차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와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착각 같은 든든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물러나던 날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내 자리에서 내려온 순간, 내게 찾아오던 연락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밥 한번 하자”라던 사람들이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일이 만들어준 인연은, 일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는 걸.


처음엔 그 사실이 서운했다.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건가 싶어 괜스레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함께 웃고 울던 순간이 모두 가짜였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었던 관계가, 일이 끝나면서 자연스레 흩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관계들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순간순간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짧지만 강렬하게 스쳐 간 대화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고, 누군가의 태도에서 배우기도 했다. 그들의 존재는 내 일과 내 젊음을 함께 빛내주던 ‘한때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모든 인연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이 끝나도 내 옆에 남아 있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 너라서 좋은 거야”라고 말해주듯이. 함께 웃고 울던 순간들이 일이라는 매개 없이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그 몇몇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벗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일 때문에 다가오고, 일 때문에 멀어지는 관계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건 그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흘러간 인연일 뿐. 다만, 일이 끝나도 남아주는 사람에게는 더 깊이 마음을 주려고 한다. 그 사람은 단순한 ‘일 인연’이 아니라, 내 인생의 진짜 동행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함을 챙기지 않는다.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도, 예전처럼 ‘이 사람은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 사람과는 웃으며 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일이 빼앗아 간 인연을 서운해하기보다, 일이 남겨준 진짜 인연을 소중히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내 연락처 목록은 예전보다 훨씬 가볍다. 하지만 가볍다고 해서 허전하지 않다. 오히려 마음은 더 든든하다. 필요할 때만 곁에 있는 수백 명보다, 이유 없이 곁에 남아주는 몇 명이 훨씬 따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만남을 거친다. 어떤 만남은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고, 또 어떤 만남은 오래도록 남아 삶을 지탱해준다. 일로 맺어진 인연과 인생으로 남는 인연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분별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결국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일이 끝나도 서로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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