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되는 만남, 빚이되는 만남

by 유트루


어릴 적에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그저 즐거움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좋았다. 새로운 만남이 주는 설렘은 언제나 가볍고, 그 만남 속에서 나는 활력을 얻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특히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달라졌다. 여전히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즐겁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묘한 피로감이 밀려온다. 그 피로감은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무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종종 이렇게 느낀다.

‘만남은 일종의 빚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미소, 공감, 예의, 배려… 그것들이 모두 교환된다. 하지만 그 교환이 항상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만남은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지만, 어떤 만남은 알 수 없는 공허를 남긴다. 그 공허는 마치 갚아야 할 빚처럼 마음에 남아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사실, 결혼 전만 해도 이런 감각은 크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새로운 자리에 나가고,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넓게 연결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은 많을수록 좋고, 인맥은 풍성할수록 삶이 든든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달려들었고, 피곤해도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많음’은 반드시 ‘좋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많은 만남이 나를 소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특히 얕은 만남은 더욱 그렇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 가볍게 웃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얻는 즐거움은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곧 사라지고,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는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었을까?’, ‘이 만남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결국 답은 없다. 남는 건, 다시 불려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다. 그것이 바로 빚의 무게다.


그렇다고 물론 모든 만남이 빚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런 만남은 갚아야 할 것이 없다. 오히려 주고받는 과정에서 더 넉넉해지고, 함께 있음만으로 충분하다. 아무 말이 없어도 편안하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에서는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 오히려 충전된다. 그런 만남은 빚이 아니라 선물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어떤 만남은 선물이 되고, 어떤 만남은 빚이 되는 걸까? 나는 그 차이는 "깊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얕은 만남은 그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웃어야 하고, 맞장구를 쳐야 하고, 예의를 다 갖추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조정하고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깊은 만남은 다르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된다. 내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고,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우리는 오히려 살아난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나는 만남의 방식을 고르고 싶어졌다. ‘누구를 만날까?’보다 ‘누구와 함께 늙어갈까?’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모든 만남은 빚이 되지만, 그 빚의 무게가 다르다. 어떤 빚은 나를 짓누르지만, 어떤 빚은 나를 자라게 한다. 이제는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만남, 오히려 그 빚이 선물이 되는 만남만을 남기고 싶다.


결국 중요한 건 오래 남는 몇 사람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돌아보면, 수많은 만남 속에서 끝까지 남아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지나가고, 몇몇만 남았다. 그리고 그 몇몇이 내 인생의 진짜 선물이 되었다.그래서 이제는 얕은 만남에 지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웃고 즐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굳이 빚처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오래 남을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남고, 그렇지 않은 인연은 그렇게 흘러가면 된다. 얕은 만남의 즐거움은 순간적이고, 그 뒤에 남는 건 공허와 피로다. 반대로 깊은 만남은 쉽지 않지만, 한 번 연결되면 오래 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만남은 빚이 될까, 선물이 될까? 만남은 빚이 아니라 선물이 될 때, 비로소 가볍고 따뜻하다는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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