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적 과학 진보주의라는 동전
새벽 2시쯤 책을 완독하고 다음날 오전 이 책을 생각하며 무슨 말을 써야 내용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니,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의 진보는 그 자체로는 아무 성질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가에 따라 이익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 진영에 있던 올더스 헉슬리는 당연하게도 전체주의의 병폐와 과학의 진보를 연결시킨 미래를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전체주의의 양면성 중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었던 것은 전체주의의 폐해를 보여주기 위한 신념의 선택과 전체주의가 자유주의보다 더 자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선택이 합쳐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책은 정말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중에 하나라고 꼽힐 만큼 너무 잘 쓰여졌다. 도저히 1932년에 미래를 상상하며 쓴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재와 유사한 부분들이 많고 무엇보다 다른 공상소설처럼 막연하고 불가능해 보이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 이럴 수도 있겠구나 느껴질 만큼 현실감 있게 쓰인 것이 참 명작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 또한 과학은 진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세계에 90년 전 사람이 2020년 현재를 바라본다면 더없이 편리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90년 후 사람이 현재를 바라본다면, 그땐 편리하고 행복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장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 해결책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연적으로 없어지거나 백신의 개발뿐이다. 바이러스의 자연 사멸을 기대하기에는 가능성이 낮고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도 큰 희생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결국은 백신 개발이 답이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현재 발생하는 지구 온난화, 동식물 멸종, 각종 환경파괴와 같은 문제들도 결국 과학의 발전으로 해결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말한 모든 문제가 과학의 진보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듯이 낙관적인 과학 진보주의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신중히 개발되어야 한다. 왜 제한적인 개발과 진보가 필요한지도 책을 보며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 기술이 나오면 그 부작용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다. 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의로 멈추지 않는 다면 무한히 이 양상을 띄지 않을까 싶다. 과학의 발전으로 혜택을 받고, 누리게 되는 행복은 동전의 한 면이다. 그 뒷면에는 각종 문제들이 존재한다. 문제의 뒷면을 가리기 위해 새로운 동전을 가져와 뒷면에 붙인다 하여도 새로운 동전은 또 다른 새로운 뒷면을 만든다. 결국 어느 한 면 만을 취할 수 없다. 결국 그것이 인류가 살아가는, 발전해가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이지 않을까?
낙관적 과학 진보주의라는 차에 브레이크도 있다는 경종을 울리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