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 아내가 군관사를 처음 만났을 때
"아 똥냄새..!!"
처음으로 군인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강렬한 똥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근처에 있는 농장에서 나는 비료냄새였다.
시골이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고, 차 타고 다녀야 하는 시골이었지만 그래도 감사하려고 했다. 근데 코를 찌르는 비료 냄새는 예상에 없었단 말이야~!!
내 남편은 직업군인이다. 군인들은 부대에서 제공하는 관사에 산다. 대부분 관사 위치는 군부대 바로 근처다.
신혼집이 나와서 이사 전에 집 보여준다는 남편을 따라 군인 아파트 단지에 왔다.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건물을 보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전에 있던 부대는 정말 낡은 관사였어서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었고 종종 녹물이 나왔다.
그 관사 사는 아이들이 씻지 못한 채 등교하기도 했다는 말을 남편 통해 몇 번 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 컨디션의 집을 생각하며 그냥 다 내려놓고 있었는데 결혼 앞두고 이동하게 된 부대 아파트는 오래된 건물이고 엘리베이터도 없었지만 이전 부대 관사보다는 훨씬 좋은 컨디션이었다.
시내로부터 차로 30-40분 떨어져 있는 군인 아파트로 올 때, 온통 논밭이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구나... 없구나... 없구나...
나는 시골에 살아본 적도 없고, 외가, 친가 모두 시골에 사는 분이 없어서 시골은 나한테 정말 낯선 곳이었다. 그래도 군부대가 시골에 있다 보니 시골에 위치한 군인 아파트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비료 냄새까지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ㅜㅜ
와... 나 진짜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너무 놀라고 충격적이어서 멍하니 서있었다.
남편은 코에 문제가 있는 건지...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고 했다. 그냥 너무 익숙한 부대 근처 냄새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군생활을 오래 한 남편한테는 익숙할 수도 있겠다. 남편이 지내고 있는 미혼 관사도 바로 이 근처였으니.
우리 군인 분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면서 근무하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고 감사하고... 근데 저는 이런 환경이 너무 낯설어요 군인이 아니라서요... ㅜㅜ
남편은 멍하게 서있는 내 모습을 보며 너무 걱정됐다고 한다.
'안 그래도 후각 예민한 소은이인데, 비료냄새가 날 줄은 전혀 몰랐다! 신혼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냄새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니 너무 미안하네 어떻게 하지?ㅜㅜ'
나는 남편의 표정을 볼 여유도 없었다. 일단 많이 놀랐다.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면 비료냄새가 가득 들어올 걸 생각하니 절망적이었다. 군인 아파트 바로 옆이 산이라 산 모기, 산 벌레도 걱정인데 거기에 비료냄새까지 하하하
하지만 기대 없이 들어선 신혼집 내부는 꽤나 쾌적하고 넓었다. "아 다행이다"라는 말이 나왔고, 일단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우리한테 이런 집이 생겨서 너무 감사했다.
비료 냄새는... 너무 낯설어서 아직까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지하철만 타고 다니던 내가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너무 낯설지만, KTX역도 없고 기차역도 없어서 혼자 부모님 뵈러 친정 가기엔 너무 먼 곳이지만, 방송작가를 이젠 못하게 될 수도 있어서 내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집 앞에 모든 게 있던 이전 생활과는 너무 다른 환경이지만, 아는 사람이나 친구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이렇게 가정을 꾸려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
드디어 군인 아파트에 들어가는구나
드디어 직업군인의 아내가 되는구나.
군인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기대 반, 걱정 반, 설렘 반..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내가 비료냄새 때문에 멍하니 서서 슬퍼하는 모습에 너무 걱정되고 미안해서 속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님, 소은이 비료냄새 괜찮아지게 해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