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아지가 안 예쁘다고요?
에너지 넘치는 우리 강아지를 데리고 강아지 운동장에 갔다.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강아지 용품도 팔고 장난감도 팔고 있어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는데 손님이 없는 탓에 심심하셨던 건지 사장님이 나랑 남자친구에게 다가와서 말을 거셨다.
"강아지 몇 살이에요?"
"1년 4개월 됐어요."
"샵에서 데려왔어요?"
"네"
"딱 봐도 연지곤지 한 느낌이라 바로 알아봤어요"
요즘은 '강아지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말이 많다. 샵에서 데려오지 말고 유기견을 데려오라는 말이다. 그 말에 공감하지만.. 강아지를 처음 키우는 것이기도 했고 여러 사정이 있어서 샵에서 강아지를 데려오게 됐다.
"제가 가게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은 다 유기견이에요"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나를 반겨주던 강아지들을 말하시는 거였다. 유기견들을,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를 키우신다고 하니 동물을 참 사랑하는 사람인가 보다 싶었다.
"아 정말요? 몰랐어요"
"저희 가게에 호텔 맡겼다가 버리고 가거나 운동장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어서 제가 키우게 됐어요."
강아지를 강아지호텔이나 강아지미용실에 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실제로 들으니 좀 놀랐다. 그리고 그런 강아지들을 보호소에 보내지 않고 키우시는 사장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그렇게 버리기도 하나 보네요.. 강아지들을 다 키우신다니 너무 대단하세요"
사실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미용실이나 택시에서 나한테 자꾸 말을 걸면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고 피로감을 느낀다.... 지금 이 사장님도 이제 그만 말을 걸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부로 강아지 장난감 쪽으로 가서 열심히 고르는데 사장님이 또 와서 말을 거셨다.
"이미 데려와서 키우고 계시니 말인데, 제가 이 말씀드려도 강아지 안 버리실 거 같아서 이야기드려요. 계속 키우실 거죠?"
"네?"
"제가 강아지를 많이 보다 보니 이런 게 눈에 보여서요, 샵에서 어쩌다가 이 강아지로 데려왔어요?"
"크림말티푸를 키우고 싶어서 데려왔어요"
"아 색상. 색상도 중요하긴 한데 보니까 강아지가 다리가 좀 긴 편이네요."
사장님은 갑자기 우리 강아지 다리가 길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 강아지 등이 긴 편이라는 생각은 했어도 다리 길이가 길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다리가 긴 건가? 싶었다.
"그래요? 등은 길어도 다리가 길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제가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다음에 샵에서 강아지 데려오실 때는 다리 길이를 잘 봐야 돼요. 얘는 좀 긴 편인데 다리 더 짧은 애들이 더 예쁘고 귀엽거든요."
"아.."
"소위 업자들이 말하는 예쁜 강아지 특징인데, 일단 다리랑 몸이 짧아야 예쁜 말티푸예요."
나는 그냥 우리 강아지가 사랑스럽고 좋아서 데려왔던 건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니 당황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이 많은 나는 강아지 업자들이 생각하는 예쁜 강아지의 조건에 대해 처음 들어서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아 그런 게 있어요? 몰랐네요!"
"네네 모르셨구나? 그런 게 또 있어요 머즐도 잘 봐야 하거든요. 얘는 보면... 머즐이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평범하네. 머즐이 짧아야 예뻐요."
나는 우리 강아지 머즐 길이에 대해 굳이 길다 짧다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갑자기 머즐 예쁜 길이 아니라고 디스를... ㅎㅎ
"그리고 치아교합도 중요하거든요. 치아가 부정교합인지, 토끼이빨인지 정상교합인지 잘 봐야 해요. 그런 게 새끼 때 다 보여요."
다리 길이가 긴 편이라느니, 머즐이 그냥 평범하다느니... 우리 강아지 외모 평가 당하는 기분이라 기분이 좀 나쁘면서도 '그래 그냥 하시는 말인데 깊이 생각하지 말자.'라고 마인드 컨트롤했다. 게다가 치아교합 같은 건 건강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보니 우리 강아지 상태를 객관적으로 듣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물었다.
"저희 강아지는 정상교합이죠?"
"예쁜 정교합은 아니고 그냥 딱 맞물리는 일자교합이에요."
사람도 부정교합, 토끼앞니, 일자교합, 정교합이 있듯이 강아지도 그렇구나.. 새로운 걸 알았네...라고 생각하려 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안 좋았다....^^
자꾸 왜 예쁜, '예쁜'을 갖다 붙이면서 우리 강아지는 그 예쁜 조건에 안 맞는다고 하는 거야??? 나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인데?
"아 그래요?"
"교합이 잘 맞아야 나이 들어서도 잘 씹어요. 부정교합이면 건강에도 안 좋아. 잘 안 씹혀요."
나도 치아 교합이 잘 씹히는 정교합이 아니라서 씹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래 건강이랑 치아랑 관련이 있으니 맞는 말이지' 하고 넘기려고 했다.
"그래도 저희 강아지 잘 씹어서 다행이네요. 일자여도 잘 씹어요."
"그리고 또 있어요, 아이라인이라고"
아이라인? 그건 또 뭐지? 기분 나쁘면 더 안 물어보고 그냥 네네~ 하고 지나가면 될 걸, 아이라인이라는 건 또 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아이라인이요? 그건 뭐예요?"
"보자 보자, 잠깐만 실례할게요~"
사장님은 다가와서 나한테 안겨있는 우리 강아지 눈꺼풀을 살짝 까뒤집고 보더니 말했다.
"아이라인이 길고 짙은 애들이 눈이 크고 선명하게 예쁘거든요. 얘 같은 애는... 아이라인이 잘렸다고 봐야죠. 별로 선명하거나 길지 않네요."
이런 단호박...
우리 강아지는 소위 '업자'들이 말하는 예쁜 강아지 조건에 하나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 난 우리 강아지 이것저것 안 따지고 그냥 마음으로 데려왔고 이미 충분히 나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인데 강아지 업자들의 기준이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강아지 얼평(?)에 대해 신경 쓰이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물론 강아지 업자들 기준에서 우리 강아지가 다리가 긴 편이고, 머즐 길이가 평범하고, 치아가 예쁜 정교합이 아니고, 아이라인이 잘렸다고 한들 그건 그들이 세운 기준의 평가고 나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안다. 남자친구도 그 말 전혀 신경 쓸 거 없다고 우리 강아지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하다고 했다.
나도 동감한다. 나는 우리 강아지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달릴 때면 너무 귀엽던데 우리 강아지가 하늘 보며 냠냠 사료 씹어먹을 때도 너무 귀엽고 똘망똘망하게 날 바라보는 눈도 너무너무 귀여운데!!
'그래 강아지 업자들은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기면 되는데 우리 강아지 안 예쁘다고 이렇게 면전에 대고 말하는 사람이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호호...
문득, 처음에 버려진 유기견들을 키운다고 하던 사장님과, 우리 강아지 외모를 평가한 사장님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우리 강아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예쁘고 좋은 걸! 등이 좀 길어서 한 팔로는 안정적으로 안을 수가 없고 강아지 백팩에 들어갔을 때 불편할까 봐 등이 좀 짧았으면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건 다 사랑해서 하는 생각이지 외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게 아니다.
우리 강아지한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강아지가 잔병하나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눈 감는 거다.
다리 짧고, 머즐 짧고, 예쁜 정교합에 아이라인 길고 짙은 강아지보다 우리 강아지가 더 예쁘고, 다른 조건보다 건강이 최고인데 왜 우리 강아지 안 예쁘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