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서른 중반이 지나면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육체의 나이는 늘어가지만 정신적으로는 딱 그 정도에서 성장이 멈춘다. 그래서 40대가 되고, 50대가 돼도 스스로 어른이 된다는 느낌이 없다. 겉모습은 분명 중년과 노년의 모습인데, 눈을 딱 감고 있으면 30대 한창 때의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
십대와 이십대는 스스로 미성숙하다는 것을 안다. 두뇌는 말랑말랑하고 뭐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수 있고 배우려 한다. 그러나 삼십대에 이르면 그 때까지의 경험이 하나의 사고체계로 굳어져 버린다.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이미 완성돼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지만 이 때 만들어진 사고의 틀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쌓일 수록 그 알고리즘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 주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람에 따라 이 시기가 빨리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오게 돼 있다.
그 불편함이 강해질 때 누군가 은근슬쩍 ‘꼰대’라고 가볍게 놀린다. ‘내가 꼰대라니?’ 싱거운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옳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가 나의 경험으로 터득한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오히려 야속하다.
만약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내 사고의 운영체계를 점검해 봐야 한다. 세상은 ‘윈도우11’로 쌩쌩 돌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윈도우XP’ 버전을 쓰면서 조각모음 잘하고, 한 번씩 리부팅도 해줘야 된다고 열심히 참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시 바탕화면을 가득 메운 온갖 프로그램들을 트로피처럼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편, 서른이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도 있다. 꾸준히 새로운 OS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사람들. 그들은 기존의 버전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했다. 불필요해진, 리소스만 차지하는 프로그램은 바로 삭제한다.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항상 최적화한다.
이런 사람은 나이는 많아도 꼰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트랜디하고 세련됐다. 따라하고 싶고 흉내 내고 싶다. 내 정신의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될지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더 나은 자신으로 갱신할 때, 인간은 성장하고 그 때 어른이 된다.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했던 사람이 있다. 그 분은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멋진 ‘업데이트 히스토리’이다.
내게도 나만의 버전내역서가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한 살을 더 먹기 위해 치열하게 나 자신을 업데이트 한다. 그렇게 계속 펌웨어를 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판갈이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바로 내가 진짜 어른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