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두려움?
절벽에서 네 손을 놓는 느낌이었어.

엄마의 편지 01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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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아.

네가 휴학을 결심한 날. 세 달 동안 여행할 것이며 그 첫 여행지가 산티아고라는 말을 했을 때는 마치 내가 그곳을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레었어.


“산들아, 산티아고를 한 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 그 말을 던졌을 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 너는 주관이 분명하고, 또 엄마 말에 쉽게 좌우되는 아이는 아니니까. 그저 내 소원을 담아 말했던 거지. 그런데 내 생각이 너에게 가 닿아 기뻤어. 그러면서도 불안하더라. 아마도 이번 여행이 너 혼자 떠나는 첫 번째 여행이기 때문이겠지. 그동안 우리는 여행길에서 항상 함께였잖아. 거의 20년 동안 가까운 일본부터 저 멀리 남미까지 참으로 많은 곳을 누볐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내 모습을 이번에 발견했단다. 그동안 친구나 동료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혼자 여행 보내세요. 그게 아이들의 성장과 독립을 위한 제일 좋은 길이에요.”라고 무수히 말해놓고는, 멕시코의 ‘거북이 알 보호’, ‘프랑스 축제’, ‘아이슬란드 눈 축제’ 등 지구 곳곳의 국제워크캠프로 친구의 딸들을 등 떠밀어 놓고는, 막상 너를 혼자 보내려니 너무나 불안한 거야. 지난번에 엄마의 권유로 민주가 혼자 멕시코로 떠났을 때, 민주 엄마가 나를 많이 원망했잖아. 내가 부추겨서 민주가 멀고 위험한 멕시코로 떠났다고. 그때는 민주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그 마음이 이해되더라고.


절벽에서 네 손을 잡는 것 같은. 엄마 심정이 딱 그랬어. 절대로 네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거야. 네가 집으로 돌아와 함께 지낸 두 달 동안 엄마는 참으로 힘들었단다.


“휴학해도 괜찮아. 학과를 바꿔도 괜찮아. 긴 인생에 젊은 날의 방황은 필요한 거야. 정말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봐.”

“엄마, 휴학을 하고 학과를 변경한다는 건 내가 패배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

“괜찮아, 긴 인생에 그쯤은 중요하지 않아.”


너를 토닥거려주면서도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고. 엄마 역시 가슴 밑바닥에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나 봐. 그래서 너에게 날카롭게 대하고, 여행 준비를 채근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속에 있는 말을 쉽게 내뱉는 아이가 아니어서 네 속을 뒤집어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스물이나 된 딸에게 채근할 수도 없고. 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가슴에 차올라 눈덩이처럼 커진 막연한 불안감을 네게 속사포처럼 쏘아댔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에서야 엄마의 마음이 돌아봐지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느 날인가 너는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지. 우선 한 달 동안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고, 한 달 동안 벨기에 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난민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할 것이고, 또 한 달은 남프랑스와 북아프리카를 여행하겠다고. 그때 너는 이미 국제워크캠프 봉사활동 신청을 끝냈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둘씩 수집하고, 배낭과 침낭 등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할 때였어. 그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네가 떠난다는 실감이 들더구나.


그때부터였지.

우리는 800km를 걷기 위한 준비로 밤마다 함께 걷는 연습을 했어. 하루에 두 시간씩. 때로는 온천천을 걷고, 또 때로는 우리 집에서 장전동을 거쳐 온천장까지 동네를 걷고, 또 우리 집에서 범어사 입구까지 왕복 두 시간 거리의 산길을 걸었어. 나중에는 10kg의 무게를 채운 배낭을 메고서 산길을 걷기 시작했지.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엄마는 참으로 좋았단다. 우리는 걷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 내가 뭔가 네게 도움이 된다는 것, 새롭게 시작하는 너의 인생길에 나 역시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


그러다 드디어 네가 떠났어. 네가 출발하는 날, 엄마는 출근해야 해서 너는 혼자서 떠났어. 집에 돌아와 보니 왜 그리도 집안이 휑해 보이던지. 그러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네가 카톡을 보내왔어. 그런데 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는 순간 뭔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단다. 집을 나서기 전 네 방 침대 위에 네 앉은키만큼이나 되는 큰 배낭을 옆에 세워둔 사진이었어. 그 순간 ‘아, 산들이는 믿어도 되겠구나. 나 혼자서 걱정할 어린이가 아니구나. 다 큰 성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너는 떠날 준비가 되었는데, 나만 혼자서 끙끙대고 있었다는 느낌도 들었어. 너는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만 손을 못 놓고 있었다는 느낌. 그러면서 나 역시 나만의 순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주인 없는 방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어. 어린이집에 다닐 때 썼던 알림장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네 흔적이 남아 있더구나. 엄마는 생각했단다. 엄마 역시 너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서, 네가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것, 마음으로 널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그러면서 엄마도 다짐을 하나 했어. 이번 너의 여행길에 절대로 내가 먼저 전화하지 말자. 내 불안을 너에게 전해주지 말자.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동안 널 자유롭게 해 준 게 아니라 항상 끈을 꼭 붙들고 있었던 거야. 절대로 그 끈을 놓지 못했어. 하지만 이제는 끈을 놓으려고 한다.


누군가 “젊음은 도전해 보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더구나. 너 자신의 시간에 집중해서 네 삶을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