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의 편지 01
엄마.
내가 정말 떠나왔어.
엄마한테도 친구들한테도 겁 없는 척, 걱정 따위는 없는 척하며 집을 떠났는데, 막상 인천 국제공항에서 덩그러니 저녁을 먹으며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 며칠 전부터 꽤 쌀쌀해진 공기처럼 그동안 모른 체하던 두려움이 스며들었나 봐.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10여 년 전 엄마 손을 잡고 들어섰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와 있어. 여행하면서 항상 이미 완벽하게 지어진 건축물만을 보다가 아직도 짓는 중이라던 이 성당에 나는 푹 빠졌었잖아. 가우디가 짓기 시작한 시간보다 100년이나 더 지나서 2026년 완공이라는 것에 참 놀랬었지. 2005년의 어린 나에게 2026년은 너무나 먼 미래였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2026이면, 곧 끝이겠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오늘 와서 보니 새롭게 더해진 좀 더 밝은 색의 콘크리트들이 많이 보여. 안 본 사이에, 그 사이에 많은 것이 생겼나 봐. 그래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예쁜 빛은 그대로야. 그때 느꼈던 따뜻하고 화사한 빛이 느껴져서 나는 이제 긴장이 풀렸어. 나는 무언가를 단번에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완벽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했어. 그런데 이 건물을 계속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깨지더라. 한 예술가의 상상력을 다른 사람이 이어받아 계속 지어나가는 건 멋진 일이니까. 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겠지.
근심 걱정도 있었지만 이렇게 나 혼자서 올 수 있었던 건 “나는 할 수 있는 운명이야.”라고 내 안에서 누가 매일 말해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야. 누군가 나한테 너는 대책도 없이 낙관적이라고 그랬는데, 나는 그래서 좋거든. 아빠를 닮아 유달리 여유로운 거니까 좋아.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봐. 아빠는 내 몸에, 말에, 행동에 다 녹아 있으니까. 그리고 엄마의 삶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테니까. 그리고 나의 우주에 큰 중력을 실어주는 엄마, 고마워. 내 안에서 누가 말해주는 건 사실 엄마의 목소리 같기도 하거든.
한나절 시간을 내어 예전에 엄마 손을 잡고 걸었던 곳을 가보았어. 좌판 가득 쌓여 있던 젤리들이 내 혼을 쏙 빼놓던 알폰소 시장, 람블라스 거리, 가우디의 가로등이 빛나던 곳과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같은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둘러보았어. 예전에는 엄마 손을 잡고 젤리를 사달라고 마냥 떼를 쓰고, 람블라스 거리의 거리 공연에 정신을 팔았는데, 이번에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더 찬찬히 보게 되었어.
내일 아침엔 버스를 타고 프랑스의 생장으로 갈 거야. 생장에서 하루 자고 순례길을 시작하려고 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나니 떠나기 싫어지는 바르셀로나지만, 내일을 위해 어서 숙소로 가야겠다.
자주 연락할게, 잘 지내.
8월 31일 바르셀로나에서.